2006년 11월 7일

어떤 8비트 키드의 현재

오늘은 기분이 여러 가지로 복잡한 하루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블로그나 칼럼을 통해 제가 회사에서 하는 구체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저의 원칙이지요. 제가 어떤 회사를 다니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회사의 보안 지침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만 얘기를 해보죠.

오늘 오전에 정통부 주최의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공모대전 사무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개발한 S/W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8월말에 출품하여 서류 심사, TTA 인증 테스트, 본 심사 및 시연, 최종 심사 등을 거쳐 이번에 확정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상을 받아도 그리 기쁘지가 않네요.

원래 이 프로젝트는 2004년에 선행 개발 형태로 제가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생각해보면 제가 현 직장에서 한 일 중에서 가장 열심히, 애정을 갖고, 스마트하게 머리를 써서 한 일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개발이었기에 제가 요구사항/기능을 모두 결정하고,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아키텍처를 디자인하고, DB를 설계하고, UI를 설계하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써서 만들었죠. 그리고 코딩은 팀원들이 했는데, 제가 정한 방향으로 잘 따라준 팀원들의 공이 참 큽니다.

어쨌든 제가 자식처럼 생각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칼럼에서 종종 강조했던 디바이스 기반의 웹서비스, 메타데이터 서비스, 리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S/W였는데, 하드웨어/소프트웨어/컨텐츠가 컨버전스된 중요한 컨셉 제품이었습니다. 그런 S/W의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모셨던 임원이 저를 믿고 맡겨주어서 제 뜻대로 구현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임원은 바로 이 원칙을 100% 실천한 분인데, 덕분에 제가 제 의지로 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위해서도 이런 제품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임원 분은 현재 안 계십니다. 당시 여러 정치적인 문제가 있어서 1차 개발 이후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올해 다른 과제에 해당 S/W가 갑자기 필요해져서 과거 코드를 꺼내 먼지 털고 수정해서 현재의 S/W를 만들었죠. 그리고 올 여름에 그 임원 분은 퇴직을 하셨습니다.

올해 버전은 이해관계자들이 많고 이상한 요구사항들도 많아서 과거 2004년의 버전보다도 훨씬 안타까운 S/W가 되었지만, 그래도 2004년 버전의 핵심 DNA가 살아는 있어서 어쨌든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수상한 S/W는 12월 초 코엑스에서 전시가 될 터이니 그때 오셔서 확인하십시오. 더 자세한 사항은 블로그에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제 마음이 복잡한 이유를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가 그것을 만들 수 있게 저를 믿고 맡겨준 (제가 존경하는) 임원이 안 계시고,
- 2년이 지나 다시 손 댄 S/W가 2004년 버전보다 못하고, (특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UI 및 개인화의 관점에서)
- 국내 S/W 업계 종사자로서 이러한 수상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고, (지난 새벽에 썼던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포스트 참고. 그 글을 쓸 때는 이번 수상을 몰랐습니다. 절묘하죠.)
- 8비트 키드로서 프로그래밍을 한 지 23년인데 그간 개인적으로나 업계에나 후배들에게 참 한 일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나름 노력을 했으나 사회 구조적인 한계, 제가 가진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애정을 가진 이 업계를 위해 별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개인적인 안위 정도만 겨우 챙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 * *

왠지 죄책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가만히, 옛날 생각들이 나네요. 제가 좀 감상적인 사람인지라,

게임이 너무 좋아서 8비트 베이직/어셈블리 프로그래밍을 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고3때 입시 공부 안하고 S/W를 5개나 만들고 돈 벌어서 담임 선생님께서 기가 막혀 했던 일,
고학하던 대학생 때 지하 셋방에 장마비가 들이쳐서 망가진 PC/XT를 부둥켜안고 울던 일,
병역특례로 들어간 회사에서 업계의 S/W 개발 관행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그냥 현역으로 군대 가려고 했던 기억,
공사중인 수원 모백화점에서 먼지 마시며 코딩하다가 창고의 시멘트 바닥에서 쓰러져 자던 시절,
자신감에 창업했다가 정리했던 개인 회사 그리고 스타벅스 프로젝트를 맡을 뻔 했는데 갑을 못 마땅해한 나머지 스스로 거절했던 일(한때 후회 했었죠),
IT 컨설턴트로 돈 많이 벌던 시절,
닷컴 시절에 유명 외국계 기업의 투자를 받아 CTO로 일했는데 회사가 망했던 일,
비합리적인 윗사람과는 절대 일할 수 없는 까칠한 성격으로 인해 참지 못하고 때려 쳤던 회사들,
저 때문에 상처 받아 업계를 떠난 팀원,
제 자신이 착한 엔지니어인 줄 알았으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던 일(그때 많이 울었죠),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했음에도 CEO에게 배신 당했던 기억 등등.

* * *

생각해보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화학공부 프로그램(나름 e-러닝이었죠)으로 삼성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입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기쁘기 보다는 반성이 됩니다. 어렸을 때만큼 제 인생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계속 분발하고 분발하여 언젠가는 정말 흔쾌히, “순도 100%”로 기쁜 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날을 위해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해나가야죠.

그것이 바로 불완전한 한 인간이, 자신이 애정을 가진 직업과 영혼의 상호작용을 통해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사랑합니다. 순수하게 좋아서 시작했고, 한때 애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는 이 직업을 통해 먹고 살았고 성숙했고 인간이 되어 갔습니다.

제 자신의 부족한 점들 예컨대 미성숙함, 인내심의 부족, 소심함, 거만함 등을 반성하고 분발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의 직업에 대해 제가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직업은 저를 배신하지 않고 저도 제 직업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종의 사랑 고백 같네요. 모든 사물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으니까요. ^^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멉니다만, 오늘은 잠시 멈추어 서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여전히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해보는 하루입니다.

끝으로, 하단의 내용은 제가 고등학생 때 만들었던 게임의 소스 일부입니다. 소스가 게재된 책을 갖고 있어서 예전에 한번 스캔해 놓았던 것입니다. 아,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네요.

제 기억에, 당시 SPC-1500 PC가 일본 기종(NEC라고 생각했는데 CN님이 샤프라고 하시네요. 음, 과거 자료를 살펴봐야 할 듯)과 호환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BASIC 잡지에 실린 소스의 내용을 SPC-1500용으로 컨버전해서 공개했었죠. 바로 그 소스의 일부입니다. (주석에 월간 컴퓨터학습 PC클럽 표시가 있습니다. ^^)


댓글 26개:

Unknown :

'사람이 아픔없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죠'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나 더 아파야 성장할 수 있을 까요?
글을 읽고 나니, 저역시 8비트세대였지만, 아픔이 적었기에 그만큼 성장이 없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익명 :

아.. 추억의 컴퓨터 사진들을 보면서..
"초심"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되는 좋을 글이었습니다^^

바비(Bobby) :

To young sung님/ 장애물와 아픔이 당할 때는 괴롭지만, 잘 극복만 해낸다면 많이 강해질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장애물을 환영하며 때로는 오히려 장애물을 향해 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To 루미넌스님/ 반갑습니다. ^^

저는 언제나 8비트 키드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닳고닳아가는 제 인생에서 거의 유일한 순수함의 도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익명 :

류책임님이 8bit키드의 마지막 생존자 처럼 보이네요.. ^^; (당시 필진 중)

그 때 자료 아직도 갖고 계시네요..
저도 컴퓨터 학습 열심히 봤었습니다.. PC클럽에서 책도 쓰고 그러지 않았나요? 그 책 집에 있나 찾아봐야겠네요..

바비(Bobby) :

To joone님/ 당시 월간 컴퓨터학습을 출간하던 곳은 민컴이라는 이름의 회사였는데(지금은 폐업), 클럽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생때 MSX I,II 파워업 테크닉이라는 책과, 대학교1학년때 애플IIe 테크노트라는 책을 공저로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8비트 키드는 현재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컴퓨터학습의 PC클럽만이 유일한 집합체는 아니었을 것이고, PC클럽 멤버 중에서 대외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는 IBM에 있다가 최근 MS 부장으로 일하는 김국현, 라그나노크와 그라나나 에스파타 게임을 개발한 김학규, 이삼구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삼구 등의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회사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익명 :

SPC-1500 이 V25 였나요? Z80이었나요?

옛날 생각이 나네요~ ^^

기술이 참 많이 발전했네요. 정말. 순식간에.

바비(Bobby) :

To dawnsea님/ Z80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SPC-1000이 정말 히트 기종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잘 만든 PC였죠(이 또한 NEC 기술 지원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말에요). SPC-1500은 SPC-1000보다 실망스러웠는데, 제가 스캔해서 가지고 있는 자료가 그거라서 게시해 보았습니다.

다른 잡지는 버렸어도 고등학생때 기고했던 잡지들은 어딘가 박스에 보관 중이거든요. 나중에 이사할 때 찾으면 한번 올려 볼께요. ^^

익명 :

저도 91년에 MSX-II로 처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 컴퓨터라기 보다는 오락기 용도로 많이 사용했었죠.

1~2년 정도 쓰다가 납땜이라는걸 배워서 MSX-II를 개조해보겠다고 들고 뜯었던 기억이 나네요.. -_-...

연령대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저도 8비트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많이 보던 '마이컴'이라는 잡지가 그립네요..

바비(Bobby) :

To promise4u님/ 아, 반갑습니다. 저도 MSX를 참 좋아했는데요.

마이컴 잡지는 원래 컴퓨터학습이 나중에 이름을 바꾼 것이죠. 제가 대학생때 이름을 바꾼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초등학생이셨다니 저와 나이 차이가 좀 나시는 듯. ^^

익명 :

제가 이 소스를 보고 뭔가 하나 만들어봤었을 수도 있겠군요.
한 일이 없으시긴요 저같은 사람이 있게 해 주신 분인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바비(Bobby) :

To 골빈해커님/ 위안이 되는 감사한 말씀이네요.

하시는 일에 진심으로 건투를 빕니다~ ^^

Channy :

ㅎㅎ 8비트 키드라...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금성 FC-100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습니다. (책에 있는 천라인 정도 되는 게임을 다 쳐서 실행 시키고, 테입에 저장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대우에서 MSX랑 삼성의 SPC-1000을 보고 부러웠었죠.

당시 퍼스널 컴퓨터 경진대회 에 본선까지는 아니고 도대회에 중학교때 까지 몇번 나가기도 했습니다. 대학 1학년때 286AT와 애플 클래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공백기였던 것 같습니다. 한석님은 저의 공백기에 더욱 열심히 하셨네요. ㅋㅋ

익명 :

80년대 초, 졸업하면 국가기밀기관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학과의 이름만 믿고 시작했던, 미래를 이끌어가는 기술의 첨단이라는 미명(?)아래 대한민국에 유일한 이름의 컴퓨터관련학과를 들어가면서 만났던 computer라는 기계.

그 기계는 제 인생의 20년을 훌쩍 넘어서도 저와 여전히 관계하고 있습니다. 88년 척박하기만 했던 IT 환경, 무진장 비쌌던 US 로보틱스 1200BPS 외장 모뎀을 상사에게 하사받으면서 접속했던 보라넷, 터미널 번호 tty 078…입력후 who is winter 라는 아이디와 첫 통신했던 짜릿함, 어린시절 007 시리즈에서 봤던 그걸 체험한 순간이란… 역시 첨단의 세계는 환상적이라고 믿게 했던 그 시절..

90년대 초를 넘어서면서 IT관련 산업은 서서히 황금기에 접어들었고.. 테헤란로는 차츰 불야성의 거리로 변했지요. ‘개발자’는 ‘고수’로 통했고, 개발자는 가장 최고의 직업이기도 했지만 개발자들은 밤새워 일하는 것을 즐겨했지요. 90년대 막바지는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모든 IT를 시작하는 사람의 꿈이었지요.

그러나 인터넷 버블과 IMF를 거치면서 IT가 중요한 인프라가 되었음에도 IT 인력들은 점차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홍안의 젊은 패기들은 더 이상 IT에 눈돌리지 않습니다. 제 학상시절, Z80에 어셈블리어를 일일이 입력하며 밤을 새웠던 실험실은 점점 비어가고, 도서관에는 영어와 상식공부에 매몰된 눈들이 가득했지요.

88년 IT 미디어에 몸담으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체신부장관, 정통부 장관들이 거쳐갔지만, 항상그들은 첫 다짐의 자리에서 자원없는 우리나라에 인력양성만이 살길이라고 외쳐왔지만 지금 얼마나 자신있게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까요.

세계가 놀라워하는 초고속 성장, 수많은 신화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공이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보다 멀리까지 지탱해줄 인력과 기술이라는 보험을 우리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매번 장관초청간담회 때마다 인력양성에 질문을 던져왔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듣곤 하면서도 다시 또 저는 그 자리에 서면 인력양성에 대해 질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술을 개발해야하고, 뛰어난 개발자들을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무엇이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어디서부터 개선되어야 할지도 짐작키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의 공력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닫힌 마음을 열고 진실로 공유하는 마음과 실천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는 성과에만 급급하지 말고 보다 멀리 보는 보험, 기술과 인력 양성이… 단순히 보여지는 지표가 아닌 보이지 않는 보고로 쌓여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에 대한 자신감, 우리에 대한 열정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는 그 시발점이 바로 지금, 어느 누구이든 시작해서, 그 시작이 다른 시작을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바비(Bobby) :

To channy님/ 앗, 차니님도 첫 PC가 FC-100이었군요. 저도 그래요. SPC-1000에 비해 너무 후져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나는..

저는 학교 공부를 거의 포기하고 PC를 했었죠. 고3때 반짝 공부해서 겨우 대학을 갔답니다. 대학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졸업하기를 잘 한 거 같아요. ^^

바비(Bobby) :

To hslee님/ 이향선 이사님, 지금까지 달린 덧글 중 최장의 덧글입니다. 짝짝~

인력 양성에 대해 의미심장한 글을 적어주셨네요. 매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진짜로 IT 인력들에게 피부로 와닿은 것이 필요하겠지요.

미디어 종사자로서 좋은 글 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익명 :

8비트 키드 분들이 만드신 "현재"에서
그 혜택만 보고 있는 저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먼저 가셔서 길을 만들어 주신 분들이 고등학교시절부터 일궈 놓으신 것을 보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저는 너무나 능력도 부족하고 보잘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려 많이 배우고ㅡ, 더욱 분발해서 뒤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익명 :

NEC의 N-Basic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보니 애플의 애플소프트 베이직도 마이크로소프트 납품이니 거의 베이직계를 재패했었네요.) SPC는 샤프의 MZ의 클론이고 허드슨의 베이직 제품을 쓰고 있으니 컴퓨터 학습에서 번안한 코드는 MZ의 코드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집에 창간호부터 마이컴으로 바뀌던 시절까지 책이 있었는데 현재 없어서 확인해볼수가 없네요. 창간호부터 있던 마소와 함께 아버지가 폐기처분하신 것이 아쉽습니다.

저는 처음 컴퓨터를 접한게 Apple 2e였지만 불법 복제된 (어떻게되었는지 하드카피였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모니터 프로그램으로 Z80 니모닉을 입력하거나 베이직 코드를 입력했던 MSX 기종이 더 친숙하네요. 입출력을 위해서 카세트 카트리지를 삽입하였던 것도 어제같고 2.4인치(?)의 퀵 디스크가 5.25인치의 플로피 디스크와 호환성이 없고 운영체제가 없다는 것에 좌절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 퀵 디스크용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설쳤는데 여전히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설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회사 이야기를 읽으면 자주 나오는 것이 정치 이야기더군요.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정치가 없을 수 없겠지만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정치 그 자체를 위한 행위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바비(Bobby) :

To dong-hun님/ 아뇨, 저를 비롯한 선배들이 더욱 잘했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장애물이 곳곳에 많았지만 그것은 개척자로서 감수해야 하는 점이지요.

동훈씨 같은 젊은 분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바비(Bobby) :

To cn님/ 앗, 반갑습니다. cn님도 8비트 키드였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SPC는 NEC의 클론이 아니라 샤프의 클론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점은 좀 가물가물한대요(저, 사실 기억력이 별로 안 좋아서 ^^).

SPC-1000의 베이직은 허드슨 것이 확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드슨 베이직 정말 잘 만든 베이직 인터프리터였죠.

그리고 당시 금성의 FC-100은 (호환조차 아닌) NEC 베낀 것이 확실하고요. NEC 6000 계열로 기억하는데, 이것은 FC-100에 한이 맺힌 부분이 많아서 1983년 일이고 나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나는 거 같습니다. SPC-1000에 비해 FC-100은 너무나도 못 만든 PC였습니다. -.-

말씀하신 내용들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다음에 오프로 뵈면, 인사 나누어요. 피드백 고맙습니다. ^^

??~* :

전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외사촌 형이 MSX로 생일케익 프로그램과 생일 노래가 나오는 간단한 BASIC 프로그램을 보여줬을 때...
사촌 형네 집에 놀러가서 AppleII로 플레이했던 카라데카...
그때 받았던 컴퓨터에 대한 인상으로 바로 컴퓨터에 모든 걸 쏟아 부었어야 했는데...
미루고미루다보니..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가 있는 그저그런 프로그래밍 인력(?)이 되어버린거 같네요...
닥치는대로 삽질도 하고 해야 실력이 늘텐데...
지금은 삽질하기 전에, 이거 삽질하면 나한테 어떤게 도움이 될까... 이 생각부터 드니 원... -_-;;;

좋은 글에 어설픈 리플을 달아버린거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바비(Bobby) :

To ??~*님/ 그런 기억들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 블로그입니다. ^^

카라데카.. 저도 깊은 인상을 받은 게임이었죠. 애플II가 하드웨어 성능이 참 떨어졌지만 S/W를 잘 만들면 그런 게임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게임이었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익명 :

정말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저에 비해서는 대 선배님 이시지만, 저도 8bit 가지고 GW-BASIC 삼매경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한석님과는 세월의 많은 차이가 나지만, 그 애정만큼은 따르고 싶습니다. 많은 길을 둘러 둘러 다시 개발쪽으로 들어온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씀처럼 정말 갈길이 멀고도, 아직 모자람을 느낍니다.
정말 많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분들도 그러하시리라 여겨지네요. 아무쪼록 몸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번창 하시길...

익명 :

한석님의 다양한 경험이
정말 대단해보입니다.
또 한번, 한없이 겸손해지게 되네요
저는 비록 늦게 프로그래밍을 알게되었지만;
아- 더욱 열씨미 해야겠습니다^^;

바비(Bobby) :

To sun+mon님/ 에구, 별로 한 일은 없습니다만 직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은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니까요.

저 또한 하시는 일에 건투를 빕니다~

To 잘나가는밍구님/ 제 블로그의 덧글은 제가 승인을 해야 게시가 됩니다. 스팸 때문에 그렇게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도 블로그에 가보았습니다. ^^ 좋은 개발자 되시기를 바랄께요.

익명 :

자주 들어 와서 한석이형의 글을 보는데 오늘은 유난히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 있네요.. 저도 컴퓨터학습/마이컴 시절에 제가 기고 했던 잡지들은 그냥 기념으로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가끔 추억속에 훌터 보기도 하고..ㅎㅎ.

참..언제 시간 나시면.. 좀더 암울한 현실의 장비SW업계도 관심을 가져 보세요. 기존에 보시던 인력난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죠.... ㅎㅎ

익명 :

저는 컴퓨터학습이 마이컴으로 이름 바꾸었을 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

잡지 같은거 보면서 잡지에 소스를 투고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대단하게 보였을 시절입니다...
뭐랄까, 그당시 8비트 업계를 이끌어 나가던 분이 류한석님 같은 분이라면, 그걸 보면서 꿈을 키웠던 저같은 사람이 그 바로 다음 세대인것 같군요... 저 다음의 세대는 it붐이 일면서 전공자들이 늘어나고 Win32부터 시작한 세대겠지요.
지금은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 분들이 허드슨 초창기 멤버분들이시라 허드슨 얘기가 가끔씩 나옵니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당시 HU베이직은 개발자가 1명이었다고 하더군요. 술자리 토크지만 [그거 정~말 대충대충 만든거였는데, 참 여기저기서 많이 써서 황송했지 ^^;]이런 대화를 듣고 미소지었던 기억도 있군요. 아마 이 분들도 당시 정말 좋아서 돈도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만들었던것 아닐까요. 그당시 허드슨의 개발자분은 지금은 다들 50대인데, 이분들의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는 노력이 바다 건너 나라에서 전혀 뜻하지않은 형태로 꽃을 피운 것이 SPC-1000이고, 그걸로 배운 분들이 1세대, 거기서 배운 게 저... 이제 그분들과 한국 2세대인 제가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감개를 금할수 없네요.

항상 옛날 얘기는 재밌다죠 ^^; 제가 그리 나이를 먹은 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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