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5일

신념으로 살다 희생으로 마감하다. 노 전대통령을 추억하며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충격적인 주말을 보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따지자면 ‘약한 지지자’였다고나 할까요. 고인이 대통령이 될 즈음 그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을 하는 동안 업적에 실망하여 기대를 버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참 평범하죠)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노무현 전대통령께 나는 그리도 모진 잣대를 들이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고민의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세상이 평가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고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고인의 공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고인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또한 한 평생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고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고, 그것이 좌절하자 스스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대통령.

주말 내내 고인을 떠올리면, 깊은 연민에 얼굴이 상기되고 눈물이 나더군요.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Nobody is perfect(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이란 실수를 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도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가족들이라면 더욱 그렇죠.

검찰은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들을 미리 흘리고 조중동은 그것을 크게 홍보했죠. 정부가, 검찰이, 조중동이 자신들이 그리도 싫어하고 만만하게 생각한 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이 죄의식조차 못 느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음에도, 고인은 가족과 측근들의 죄(아니,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죄)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현 시대는 권력자와 재벌 등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이 시대에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주변 친지들의 모든 죄를 사하고, 지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 현존했다니. 이런 격언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려면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저는 깊이 슬퍼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성의 감동입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제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는.

현 시대에 만나기 힘든 놀라운 신념과 희생을 보여준 노무현 전대통령께 Roy Orbison이 부르는 Danny Boy를 바칩니다.



PS: 오늘 외출을 했다가 일부러 시청 앞에 갔습니다. 덕수궁에 시민단체가 마련한 분향소에 가보려고 했는데 경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경찰이 통로를 막고 있어 조문하는데 4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경찰이 어떻게 조문도 못하게 막습니까?

관련기사: [한겨레] “예우한다며 추모 막나” 경찰버스 벽에 시민들 분노

노무현 전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하는데 5년이 걸렸는데, 현 정권은 1년 만에 70년대로 회귀시키는군요.

하단은 제가 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덕수궁 앞을 지나며

경찰차에 적힌 공허한 표어

5/30까지 절필합니다.

2009년 5월 11일

유능한 말단 직원, 무능한 보스

‘뉴욕에서 의사하기’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고수민님께서 좋은 글을 올려 주셨네요. 항상 진솔한 글을 꼼꼼하게 써주시는 분이죠. 제가 구독하는 몇 안 되는 블로그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최근에 블로그 구독을 많이 줄였어요)

빠른 한국인, 느린 미국인 생산성의 반도 안되는 이유

위 글은 장용성 미 로체스터대 교수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를 바탕으로 쓰인 것인데요.

저도 항상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실인데, 장용성 교수의 글을 보고는 바로 공감했습니다. 통찰력 있는 주장입니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미국의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아주 훨씬 성실하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능한 보스들이 그것을 다 까먹기 때문인 것이죠.

우리 사회에서 유능한 젊은이가 빨리 발탁되고 승진되는 문화는 과연 언제나 도래할까요? 오히려 똑똑한 젊은이들에게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것을 보니, 개선이 아니라 개악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유능해도 경력이 적으면 승진이 안 되고, 유능해도 나이가 많으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연공서열제. (물론 다른 쪽으로 유능한 사람은 승진하고 생존하죠)

여러분의 회사는 어떠신가요?

(그림 출처: http://danvzare.deviantart.com)

2009년 5월 8일

[JIFF 2009] 무언가 실행했다는 좋은 기억

어떤 작은 일 때문에 한없이 소심해지고, 막 신경이 쓰이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웁니다.

이건 1년 후에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인생 뭐 있나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죠. 네, Live for Today.

그런 의미에서 바쁜 와중에서도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비록 개막제도 참가하지 못했고 폐막제도 참가하지 못했지만요. 이틀 밖에 참석을 못했죠. 하지만 좋은 경험을 했고, 앞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도 가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가보려고요.

여러분도 마음이 막연히 원하는 그것을 직접 행해 보세요. 망설여지면 이렇게 주문을 외우는 거에요.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서 후회하자.

전주는 서울과 달리 번잡하지 않은 느낌이 좋았어요. 영화제를 하는 동안에도 영화의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어요. 하단의 사진은 제가 귀차니즘을 참고서 직접 찍은 것들입니다. ^^ 사용한 카메라는 그냥 똑딱이인 니콘 S610입니다.

이것으로 JIFF와 관련된 마지막 글을 마칩니다.

영화의 거리, 낮 풍경

영화의 거리, 밤 풍경

잠시 방문했던 전주한옥마을 전경

마을 내 어떤 찻집과 테디베어샵

마을의 거리에서 만난 테디베어. 넌 왜 여기에 있니?

그냥 찍고 싶었던 식물

인상적이었던 어떤 집의 담벼락

마을을 떠나는 길. 큰 길이 아닌 옆 길..

전주 어느 변두리에서 만난 집의 장독들. 마치 사이 좋은 형제 같아요.

삶의 시간을 더 늘리는 비법

코미디언이자 영화 배우인 그르초 막스(Groucho Marx)가 이런 말을 했죠.

TV는 매우 유익하다. 그래서 누가 TV를 켤 때면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저는 예전 자취할 때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TV를 켠 후(아무 소리가 안 나면 왠지 쓸쓸해서요), 잘 때까지 틀어놓고는 했는데, 그렇게 습관적으로 TV를 쳐다보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가 고장 났죠. 정말 갑자기 TV가 터져서 위에서 막 연기가 났어요.

아, 이때다 싶어 TV를 버린 후 보지 않은 지 한 6년쯤 되었는데. 그건 정말 제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앞으로 TV를 살 수도 있겠지만(딱히 계획은 없어요), 가끔 영화를 보거나 모니터로나 쓰려고요. 꼭 보고 싶은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든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죠.

TV를 안 보는 시간만큼 인생에서 사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를 하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진지한 사색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 만큼 늘어나니 이건 거의 “생명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V를 없애고 나면 누구든지 TV 없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어쩌면 인터넷도 그럴 지 몰라요.

2009년 5월 7일

[JIFF 2009] 홍상수 감독, 멋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인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에 홍상수 감독이 참여했습니다. ‘첩첩산중’이라는 단편을 만들어 선보였는데 정말 그의 영화다웠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일상 남녀의 평범한 사건을 통해 통속적인 속내(하지만 너무나 흔해서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는..)를 신랄하게 까발리죠. 그는 평범한 현실에서 불편한 진실을 찾아내서는 관객에게 들이대며 “이거, 당신 모습 맞지?”라고 얘기하는 악동입니다.

이번 단편에는 문성근, 정유미, 이선균 등이 출연했는데요. 배우 문성근은 최근 영화 ‘실종’에서 싸이코역을 잘 소화했는데 이번 홍상수 감독의 단편에서도 위선자(하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연기를 참 적나라하게 잘하더군요. 그리고 선한 인생의 배우 이선균, 독립영화의 히로인 정유미. 캐스팅도 굿이었습니다.


이번 단편과 관련해서 인터뷰한 내용을 잘 정리해 놓은 블로그가 있네요.

첫 단편 [첩첩산중] 발표한 홍상수, "원래 하던 대로 만들었다"

원래 하던 대로 만들었다니, 호홋, 정말 그다운 멘트네요. 정말 딱 그런 영화거든요.

모든 한국의 감독이 홍상수 감독 같을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한결같이 만드는 감독은 홍상수 감독뿐이죠. 딱 한명이에요. 그래서 참 소중한 한국의 감독입니다.

감상하면 참 좋지만, 쉽게 손이(아니 눈이) 가지는 않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 이번 달에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하는데, 이번에는 흥행 성적이 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비평가들만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자신의 갈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홍상수 감독을 응원합니다. 원래 하던 대로 계속 해주세요.

[JIFF 2009] 홍기선 감독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연휴 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고요.

아마도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보신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1980년대에 장산곶매를 설립했던 홍기선 감독(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의 제작에 참여했죠)이 1992년에 만든 첫 번째 상업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92년 낭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1993년 산레모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죠. 또한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고, 주연을 맡은 조재현(여러분이 아는 바로 그 배우죠)은 청룡영화상 신인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조재현이 속아서 멍텅구리배(새우잡이배)에 팔리게 되는데, 배에 억류된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과 이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여자는 인신매매 되어 섬의 술집에 팔리고 남자는 새우잡이배에 팔린다는 소문이 유행했죠. 그런 시절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멍텅구리배에 대해 궁금하시면 링크)

이 영화는 1991년 영화진흥공사의 사전 제작 지원작으로 낙점되었다가 번복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고, 국내 개봉 당시에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엄청나게 칼질이 돼 개봉되어(당시는 흔한 일이었죠) 제대로 감상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흥행에도 실패해서 곧바로 잊혀진 영화가 되어버린 비운의 영화입니다.

저는 당시에 이 영화를 못 보고 그 후 계속 이 영화가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드디어 이 영화를 본 것입니다! (혹시 DVD라도 나오나 가끔 찾아보곤 했는데 17년 만에 봤습니다. 흑흑)

영화의 화질은 참 안 좋더군요. 중간에 끊기는 부분도 있고. 영화 내용도 솔직히 기대보다는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기대를 하기는 했죠. 당시 칼질을 엄청나게 당했다기에 자극적인 부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더군요. 아마도 리얼한 욕설 등이 주로 잘렸던 거 같아요. 기대보다는 영화가 평범했지만 그래도 소원 하나 풀었습니다.

탤런트이자 연극배우, 영화배우인 조재현은 한 20년 전 TV 단막극(MBC의 특집극이었는데 제목이 ‘누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에서 처음 보았는데, 누명을 쓴 주인공 청년역을 하도 절절하게 해서 그때부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초반 그가 그리 유명하지 않았을 때 그가 출연한 연극을 관람한 후, 공연 관계자에게 얘기해서 그와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 잠시 대화를 하고 싸인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갖고 있죠. 그때 제가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 출연해 주세요~"라고 말한 기억이..)


이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악어’에서 엄청난 명연기를 펼쳤고 ‘피아노’, ‘눈사람’ 등의 TV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어서 현재의 위치에 이르고 있죠. 최근에는 대학로의 연극열전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고요.

그는 TV, 영화, 연극 모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독특한 배우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를 여전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예전만은 못해요. 초기의 거칠고 힘 있는 연기를 이제는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작품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럴 수 밖에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강한 연기력을 생각할 때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쨌든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보았고, 조재현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보았으니 만족합니다.

무언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 있고(비록 작은 것일 지라도), 이렇게 하나씩 이루는 맛이 있으니 인생이 즐겁습니다. ^^

승리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메모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출처는 미상이네요.

과녁을 겨냥해도 화살은 빗나갈 수 있는 법이다. 겨냥 자체를 승리로 생각하자.

뭔가 실행하기 두려운 이 사회에서, 꿈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이 사회에서, 망설이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을 남기기 보다는, 차라리 하고서 후회를 해요.

2009년 5월 6일

[JIFF 2009] 시와 같은 영화 ‘환송대’, 그리고 크리스 마르케

(12 몽키즈를 안보신 분께: 스포일러가 있으니 감안하고 보세요)

여러분은 아마도 테리 길리엄 감독의 ‘12 몽키즈’를 아실 겁니다. 아직 안보신 분은 당장 보세요~

1995년 영화이지만 이런 영화 쉽게 만나기 힘듭니다. (테리 길리엄 강독은 영화 마니아들한테는 일찍이 ‘브라질’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감독인데, 저도 20년 전에 ‘브라질’을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My Favorite 영화 톱10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12 몽키즈의 스토리는 조금 복잡합니다. 어렸을 때 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것을 강렬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남자(브루스 윌리스)가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진 지구에서 죄수인 브루스 윌리스는 사명을 띠고서 과거로 보내지게 되는데, 그 과거에서 죽습니다. 바로 그 죽음을 목격하는 소년이 바로 어렸을 때의 브루스 윌리스죠. 시작 장면과 끝 장면이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구성이죠.

참 좋아한 영화였는데, 12 몽키즈의 원작이 바로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환송대(La Jetée)’라는 사실을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알았습니다!

이번 JIFF의 마스터 클래스 섹션에서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레벨 5’가 상영되었는데 사전에 영화 해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 이제야 알다니.. 바보)


그리고 ‘환송대’를 영화제에 참가하기 전에 어렵게 구해서 보았습니다. ‘환송대’는 1962년에 만들어진 30분짜리 단편 흑백영화입니다. 특이하게도 딱 한 씬만 제외하고는 영화 전체가 나레이션, 스틸 사진, 음악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1초에 한번 정도 스틸 사진이 바뀌며, 동영상은 딱 한 장면에서만 나옵니다. 1초에 한번 바뀌는 영상을 영화라고 해야 할 지. 어쨌건 아주 독특합니다.

솔직히 영화는 별로 재미가 있진 않습니다. 그래요, 이런 류의 영화는 재미로 보는 게 아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영화의 스틸과 음악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환송대는 영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시였던 것입니다.

12 몽키즈는 환송대의 중요한 플롯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큰 뼈대가 동일합니다. 이로서 테리 길리엄 감독에게 제가 가졌던 존경심의 일정 부분이 원작자인 크리스 마르케 감독에게 이전되었습니다. ^^

시간여행, 기억과 암시, 실존에 대한 의문.

킬링타임용 영화도 좋지만, 이런 영화 너무 좋습니다. 좋은 영화는 한 권의 좋은 책과도 같죠. 읽고나서 남는 게 있고 시간이 흘러도 곱씹어볼 뭔가가 있어요. 진지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분은 12몽키즈와 환송대를 한꺼번에 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2009년 5월 2일

누나가 보내준 러시아 옛날 노래들

누나가 예전 러시아 유학 시절에 좋아했던 노래인데 YouTube에서 찾았다며 보내준 노래들입니다. 앞의 두 곡은 저도 처음 듣는 곡이네요. 러시아 노래는 그들의 정서상 우울한 느낌의 노래가 많은 거 같습니다.

좀 전형적인 표현입니다만, 춥고 눈이 내리는 도시와 보드카.

‘눈이 흩날리네’


‘희망’


이 곡은 잘 아실 거에요. 그 유명한 ‘백학’.


마지막으로 심수봉의 번안곡으로도 유명한 ‘백만송이 장미’. 그런데 번안곡은 원곡의 슬픈 가사를 잘 살리지 못해서 별로.

자신의 온 재산을 바꾸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백만송이 장미를 선물한 어느 가난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 내용이죠. 예전 포스트에서 가사와 함께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세속적인 우리가 그런 사랑을 하지는 못할 지라도.. (이런 말이 있죠. 영원한 사랑은 유령과 같아서 모든 사람이 얘기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랑을 지향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잃지 말아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