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6일

떠나간 스티브 잡스, 애플의 과거와 미래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76년에 애플을 창업한 후 Apple I라는 8비트 PC를 선보였고, 이후 대중적인 Apple ][를 출시하며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만들어낸 장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잡스옹이 돌아가셨네요(그는 이처럼 시작과 끝을 IT업계와 함께 하며 임팩트를 준 사람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앙상한 몸을 보이면 죽음이 가까웠다는 신호일까요(얼마 전 최동원 투수도 그랬죠).

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탁월한 전략가이자 냉철한 비즈니스맨이자 존 레논의 ‘Imagine’을 좋아했던 몽상가 잡스. Apple ][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스타로 부상하고 나스닥에 입성하면서 크게 성공했지만, 무지 독특한 성격과 그 자신이 기획한 매킨토시 사업의 부진으로 인해 애플에서 쫓겨나게 되고, 절치부심 끝에 다시 돌아와서 지난 10년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달아 성공시켰다는 건 다들 아는 스토리일 겁니다.

그런 뻔한 얘기보다는 제 개인적 감상과 관점을 얘기하고 싶네요. 현재의 애플을 존재케 한 Apple ][에 대한 감상은 제가 작년에 썼던 글이 있으니 다시 링크해보겠습니다.

관련 글: MSX와 Apple ][의 추억

젊은 사람들이나 IT 업계에서 오래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입니다. 애플의 초창기 제품인 Apple ][는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품이었고 8비트 PC 시장을 제패하며 10년 이상을 현역에서 활동한 컴퓨터였습니다.

Apple ][가 아니었다면 과연 현재와 같은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생겼을까?라는 의문도 품어볼 만 합니다. 왜냐하면 애플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IBM이 PC를 만들게 됐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애플의 소프트웨어 협력업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나중에 맥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면서 얻는 정보로 윈도우를 만들게 되죠.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고,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잡스 이전에도 개인용 컴퓨터가 있었고 빌 게이츠 이전에도 소프트웨어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제품의 제 값을 받아내 ‘산업화’한 공로가 큽니다.

두 사람 모두 IT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전략가이자 비즈니스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그들 아니고서는 해내지 못했을 거 같습니다. 그런 두 거인 중 한 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네요.

현재의 잡스가 아닌 과거의 잡스가 어땠는가 하는 건 매킨토시의 탄생 스토리를 주제로 한 ‘미래를 만든 Geeks’라는 책에 상세히 나옵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 있으니 잡스를 추억하며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1984년 매킨토시 출시 때의 발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잡스표 프레젠테이션의 시초라고 할 수 있죠(마지막 부분, 청중들의 열광과 잡스의 미소에 새삼 울컥).

관련 글: 매킨토시의 탄생 비화, “미래를 만든 Geeks”

제가 좋아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명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항상 불가능에 대한 꿈을 가지자.”

이 명언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잡스가 아닐까 합니다. 냉정한 비즈니스맨이면서도 남들이 다 비웃을 때 미래에 도전한 사람이 그이기 때문입니다. MS의 CEO 스티브 발머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다고 하자 “컴퓨터도 제대로 못 만드는 회사가 이제 휴대폰을 만든다고 합니다. 하하”라며 비웃기도 했죠(당시의 맥에 대한 시장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거든요). 이후의 상황은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입니다.

애플의 최근 10년간 새로운 서비스와 디바이스에 대한 도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가 기존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자료 중 일부입니다(어제 발표된 아이폰4S는 빠져 있으며, 클릭하면 그림이 확대됩니다).


서비스와 디바이스를 번갈아 가면서 소비자를 락인(lock-in)하는 전략이 아주 뛰어납니다. 애플의 성공은 행운이 아닙니다. 가히 10년간에 걸친 교묘하면서도 치밀한 전략의 결과가 현재의 애플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스마트 디바이스(또는 N스크린) 생태계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잡스가 타계했다는 점입니다. 하단의 그림을 보시면 이제 아이TV만 남았는데, 아이TV만 출시되면 완전한 스마트 디바이스 생태계의 완성이 이루어지거든요(현재의 애플TV는 단순한 셋톱박스이고, 진정한 스마트TV인 아이TV가 내년이나 후년쯤 출시된다는 루머가 있습니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소비자들은 완전한 N스크린의 사용자경험을 누리고 애플은 강력한 락인효과를 통해 상당히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결국 난세를 통일하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로 잡스는 떠나갔습니다.

어제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서 보셨듯이, 잡스의 공백이 생각보다 큰 느낌입니다. 지금이 아이폰4S 발표할 때입니까?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엄청난 스피드로 다양한 제품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아이폰4 이후 16개월만에 이런 정도의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하다니 말이죠. (물론 여전히 잘 팔리고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애플은 엄청난 수의 지지자들을 갖고 있으니까요.)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은 기술적 격차가 상당히 컸는데 이제는 오히려 애플이 뒤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디바이스에서는 말이죠. 물론 소프트웨어나 UX에서는 여전히 애플이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만.

어제의 발표는 애플로서는 꽤 실망스러운 신제품 발표였습니다(단, Siri 기술은 대단하더군요. Agent UI의 상용화라니!). 앞으로 애플의 미래는 어떨까요? 지난 10년간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가 상당히 탄탄한 관계로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애플이 지배하는 시장이 수십수백년 가는 건 아니고, 고객도 언젠가는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노키아와 닌텐도를 보세요).

현재의 모습으로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미래 전략의 수립과 실행력이라는 측면에서 애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사실입니다. 애플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통한 전직원의 아이디어 발산과 잡스의 통찰력을 통한 아이디어의 튜닝 및 집중적인 실행이 가장 큰 장점인데(앞서 링크한 관련 글 참고), 이제 애플에도 모든 대기업이 그런 것처럼 관료주의와 사내정치가 퍼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잡스가 컴백하기 전인 1990년대에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잡스가 끝까지 지키려 한 애플의 조직문화(잡스는 애플이 30년째 벤처 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죠)가 다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군요. (참고로, 빌 게이츠가 떠난 MS는 관료주의와 사내정치가 판을 치고 있고 전 그게 MS의 부진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잡스는 애플을 아주 독보적이고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애플의 DNA가 변질되지 않고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잡스는 제게 있어 어릴 시절(중학생때)의 아이돌이었습니다(Geek의 아이돌은 남달라요).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잡스가 그리도 좋아했던 노래, Imagine을 함께 감상해요(뮤직비디오인데 노래는 조금 늦게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