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5일

자그마한 만남의 자리를 갖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는 이런저런 행사를 참 많이도 개최했는데요. 독립한 이후에는 전혀 개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의뢰를 받아 컨퍼런스나 세미나 등에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는 일은 종종 하고 있지만요.

거의 5년 만에 작은 행사 하나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포털 다음의 김지현 이사와 함께 자그마한 만남의 자리를 갖습니다.

20명 이내의 분들만 참석가능하고요. 일시는 11월 22일(목) 저녁 7시 30분, 장소는 교대 토즈입니다.

토크나 대담이라고 하기까지는 뭐하고요. IT업계, 기술, 비즈니스, 직장생활, 진로, 삶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김지현 이사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신 분들의 얘기도 듣고 그러려고 합니다.

저를 잘 모르시는 분보다는, 하단의 내용에 해당하는 분에 한해 오셨으면 합니다.

  • 제가 과거에 수년간 썼던 ZDNET 칼럼을 기억하시는 분 (한국에서 ZDNET이 철수한 이후로는 안 쓰고 있죠)
  • 제 블로그를 오래 전부터 구독하고 계신 분
  • 제 책을 읽어보신 분

참석을 하시면, 하단의 내용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 IT업계의 여러 이슈
  • IT업계에서 살아남는 법 (제가 성공은 몰라도 생존은 자신 있거든요. ^^)
  • 회사에서 인정 받는 법 (또는 똑똑하게 일하는 법)
  • 스카우트, 해고, 이직, 창업
  • 커리어 관리
  • 삶의 의미와 추구하는 방향 등

무척이나 개성이 강한 두 인간이 어떤 생각을 갖고서 살아가는 지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각자의 진로나 삶의 방향을 수립하는데 작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전 등록은 여기에서 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참가비가 있지만 장소비+케이터링 비용을 감안하면 적자로 하는 거에요. 혹여나 수익사업으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PS: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의뢰 받은 다른 행사와 비슷한 시기에 개최하게 됐습니다(사실 이번 행사가 먼저 계획된 거랍니다). 다른 큰 규모의 행사와 달리, 이번 행사는 소규모의 보다 친밀한 자리입니다. 단순히 저희 얘기만 듣는 게 아니라, 직접 얘기도 하시고, 업계 친구나 선후배도 사귈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2012년 11월 6일

Windows 8에 담긴 마이크로소프트의 과욕

최근 Windows 8이 공식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8월부터 RTM 버전(제조사와 개발자를 위해 미리 제공하는 것으로서 정식 버전과 동일)을 제가 서브로 사용하는 21인치(1920x1080) 터치스크린PC에 설치해서 3개월째 쓰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가 대부분의 작업을 하는 메인PC에서는 Windows 8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1980년대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OS를 사용해온 이후로, Widows 8은 제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MS의 두 번째 OS가 됐습니다! 첫 번째는 Windows Me였습니다. 저는 Vista조차 사용했는데 말이죠.

Windows 8은 MS가 나름 고생해서 만든 제품이겠습니다만, 사용자 관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제품입니다. 새로운 Windows 8 스타일UI(구 메트로UI)와 기존의 데스크톱UI는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로 어색하게 ‘한 지붕 두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화면이 작은 터치스크린에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스타일UI는 그럭저럭 쓸 만은 합니다. 그런데 좋은 UI란 기능(Function)과 美(Beauty)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Windows 8은 그렇지 못하다고 봅니다. 스타일UI는 얼핏 보면 깔끔합니다. 하지만 특히 대형모니터에서는 공간의 낭비가 심하고, 마우스로는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여러 앱을 동시에 활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스타일UI는 대형모니터를 앞에 두고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는 사용자를 위한 UI가 결코 아닙니다. 스마트폰, 태블릿에 적합한 UI를 데스크톱PC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느낌이죠. 물론 Windows 8에서는 기존 데스크톱UI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게 Windows 7 대비 별로 이점이 없거든요. 계속 스타일UI에 대해 얘기해보죠.

Windows 8의 초기화면에 표시되는 타일(Tile) 메뉴를 보면, 하나의 타일이 차지하는 공간이 쓸데없이 큽니다. 물론 커서 터치하기는 좋지만 많은 타일을 표시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앱의 개수가 많아지면 끔찍합니다. 거기에다 일반 타일의 두 배 크기인 라이브타일(Live Tile)은 말 그대로 실시간 정보를 표시하는데, 얼핏 보면 예쁘지만 그리 도움이 안 되는 정보를 표시하는데다 공간의 낭비가 더 심합니다.

또한 스타일UI를 쓰다 보면, 참바(Charm Bar, 안드로이드폰의 화면 하단 물리버튼과 흡사한 역할을 함)라는 메뉴를 스크린 오른쪽에서 터치를 드래그해 계속 불러내야 하는데 이게 엄청나게 피곤합니다. 항상 표시하기에는 부담이 돼서 숨겨놓은 거 같은데 매번 불러내기 너무 귀찮아요.


스타일UI에서 앱을 실행시키면 언제나 풀스크린으로 앱이 실행됩니다. 스냅뷰라고 해서 동시에 두 개의 앱을 띄울 수 있는 기능이 있기는 한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라면 몰라도, 대형모니터에서 최대 두 개의 앱 화면만을 보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입니다. 더군다나 윈도우스토어에 들어가보면 사용할 수 있는 앱의 개수가 무척 적을 뿐만 아니라 수준 낮은 앱이 대다수입니다.

MS는 윈도우폰과 서피스를 살리기 위해 PC 유저에게도 동일한 스타일UI를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물이 Windows 8입니다. 그런데 MS는 모바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터치스크린이 없는 일반 데스크톱PC 사용자들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는 UI를 강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MS의 명백한 과욕과 오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20인치 이상의 표준모니터를 가진 일반 데스크톱PC에서 스타일UI를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을까요? 억지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PC의 가장 큰 장점인 멀티태스킹을 위해서는 빈번하게 앱을 전환해야 해야 하고 이는 결국 작업 속도를 심각하게 저하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스타일UI가 싫으면 초기화면에서 ‘데스크톱’이라고 표시된 타일을 클릭해서 기존 데스크톱UI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부팅 때마다 사용하지도 않을 스타일UI를 반드시 거쳐서 데스크톱 모드로 들어가야 하며, 이게 셋방살이 하는 느낌입니다.

제가 Windows 8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는 메인PC에서 터치스크린이 아닌 27인치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7인치 모니터에서 앱을 풀스크린으로 사용하거나 기껏해야 스냅뷰로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더욱이 스타일UI는 마우스로 이용하기에 적합하지도 않습니다.
  • 그렇다고 저는 모니터를 터치스크린으로 바꿀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PC에서 주로 문서 작성, 인터넷 서핑, 동영상 감상 등을 하며 항상 여러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터치스크린을 가진 서브PC에서 일부러 저의 사용 패턴에 맞춰 마우스, 키보드, 터치스크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해보니 너무나도 비효율적입니다.
  • 그렇다고 Windows 8의 데스크톱UI 환경에 커다란 매력을 느낄만한 개선사항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메뉴가 없어서 맘대로 사용하기에 불편합니다. Windows 8에서 데스크톱UI는 확실히 푸대접 받고 있습니다. 제품 발표회에서도 스타일UI만 강조하더군요.
  • Windows 8은 기본 UI가 스타일UI이고 거의 대부분의 신기능이 스타일UI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용 패턴상 터치 기능이 필요 없고, 그에 따라 스타일UI는 안 쓸 것이고, 데스크톱UI 환경은 매력적인 개선사항이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Windows 8을 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소위 얼리어댑터입니다. 저는 정말 새로운 OS를 좋아하며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런 저조차 사용하지 않게 만들 정도이니 MS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거 같습니다.

저와 유사한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업무용으로 Windows 8을 도입하는 걸 꺼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최소한 데스크톱PC에서 직원들이 업무용으로 Windows 8을 이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업 시장에서 발생하는 MS의 매출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는 앞으로 MS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겁니다.

"PC와 스마트폰, 태블릿에 완전히 동일한 UI를 제공하겠다”는 MS의 야심은 과욕에 그칠 거 같습니다. 기기마다 사용 패턴이 다 다르므로 각각의 기기에 최적화된 UI를 제공하면서 필요한 부분에 한해 사용자경험의 일관성을 제공해야지, 이런 기계적인 통합은 사용자를 무시하는 행태입니다.

결과적으로 Windows 8은 모바일에 맞는 UI를 데스크톱PC 이용자들에게 강요하는 꼴이 됐고, 이는 MS의 커다란 패착이 될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Windows 8은 MS의 과욕과 오만이 나은 불쌍한 제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Windows 8이 쓸모 없지는 않을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터치스크린을 가진 PC나 노트북을 갖고 있다면 Windows 8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만일 여러분이 새로운 PC나 노트북을 살 생각이라면 기왕이면 터치스크린을 가진 것을 사면 좋겠죠. 다만,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면 그만큼의 효용을 얻을 지는 의문입니다.

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Windows 8은 터치스크린에 적합한 사용 패턴을 가진 일부 사용자(특히 모바일 사용자)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터치스크린이 없는데다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띄어놓고 작업하는 사용 패턴을 가진 사용자에게는 굳이 업그레이드할만한 가치가 없는 OS라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반 사용자든, 기업 사용자든, Windows 8로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현재 MS가 아주 싼 가격에 제품을 풀고 있는데다, 신제품 출시 효과로 인해 초반에는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MS에게 있어서 Windows 8은 PC 사용자들에게는 외면 받고 자사의 스마트폰/태블릿도 살리지 못한 최악의 제품으로 역사에 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MS는 많은 분야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계속 노쇠해져 가고 있는 MS의 기업 경쟁력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MS의 기업 경쟁력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루겠습니다.

2012년 7월 31일

소비자를 기만하는 ‘KT의 정보유출 사과 메일’

KT 휴대폰 가입자 870만명의 개인정보(휴대폰번호, 이름, 주민번호, 그 외 가입관련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서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기사를 참고하세요.

관련기사:
[KBS] KT 휴대전화 가입자 8백만 명 정보 유출 파문
[한겨레] 개인정보 유출 의심신고 KT본사서 묵살

확인해보니 제 정보도 털렸습니다.

아무리 보안시스템을 잘 갖추어도 뚫릴 수는 있습니다. 더군다나 국내 기업들은 보안시스템의 수준이 부실한 경우가 많아 이제는 이런 뉴스가 나와도 새삼스럽지 않을 지경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KT가 해킹 당했다는 뉴스를 처음에 접했을 때도 그리 놀랍지가 않더군요.

이런 사건들에 익숙해지다니.. 서글픈 현실이죠. 어쨌든 국내 기업들의 부실한 보안시스템에 조금 열을 받기는 했습니다(1차 열 받음).

그런데 KT가 엄청나게 늦장 대처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조금 더 열을 받았습니다(2차 열 받음). 그리고 정보 유출이 이루어진 시점 이후부터 이용자들의 신고가 급증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열을 받았습니다(3차 열 받음).

그런데 확 열 받은 계기는 이것입니다. KT 웹사이트에서 제 정보가 유출됐는지 확인하니 다음과 같은 팝업이 뜨더군요. 제가 빨간 줄로 표시한 부분을 보세요.


하하, 전량 회수조치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종이 서류도 아니고, 유출자가 유출을 하자마자 하나도 못 써먹은 상태에서 PC를 압수했으면 모를까, 유출자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5개월 동안 타업체들에 정보를 팔아 7억원의 이득을 취했고 그 정보를 사간 사람들이 또 그걸 어떻게 써먹었는지 팔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슨 회수 조치가 됩니까?

이건 둘 중의 하나입니다. KT가 디지털 정보의 무한 복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없든가, 아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전자일 가능성은 거의 0이니, 당연히 후자입니다.

정보 유출 그 자체보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KT의 태도가 더 불쾌합니다(4차 열 받음).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내 바쁜 일에 묻혀서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KT의 메일을 받고서 다시금 폭주하여 이 글을 씁니다. 하단이 메일 원본이고 역시 빨간 줄로 표시했습니다.


해당 정보가 모두 회수되다니요? 제발 이런 식으로 소비자 기만하지 마세요(5차 열 받음).

해킹 사건 자체보다 진실하지 않은 모습이 더욱 불쾌합니다. 전량 회수되었다느니, 이런 표현 쓰지 마세요. 보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당연히 KT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진실이라도 얘기하세요.

진실을 알리고 고객을 생각한다면, KT의 문구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정보를 모두 회수하면 좋았겠으나, 고객님 및 다른 고객님들의 정보는 이미 수많은 업체들에게 7억원에 팔린 상황이라서 전량 회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디지털 정보의 특성상 복제되어 퍼진 정보는 사실상 회수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사과 드리며 보상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PS: 현재 KT가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죠(관련기사).

2012년 7월 20일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어떤 분의 죽음

정말, 많이, 슬픈 하루입니다.

오늘 오전, 제가 예전에 모셨던 직장상사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계신 한국계 미국인이신데, 너무 늦게 암을 발견한 나머지 딱히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50대 초반의 나이에 산악자전거 타기를 즐기시고 무척 건강하신 분이었는데 갑자기 너무 일찍 가셨어요.

아마도 제 블로그나 여타 글들을 이것저것 보신 분이라면, 제게 상당한 영향을 준 직장상사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에서는 P상무님이라고 지칭할게요.

저는 사회생활을 20여년간 하며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고, 그 동안 평범한 직장상사를 비롯해 사기꾼, 위선자, 싸이코 등 다양한 유형의 직장상사들을 만났습니다. 높은 자리로 갈수록 이상한 분들이 많더군요. -> 이것이 이 사회가 이렇게 삭막해진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사람이 모르고 순진해서 착하기는 쉬워도, 닳고 닿은 경험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법을 다 알면서도 착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그리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영악한 처세를 하기 마련이죠. 지속적으로 스킬이 향상되기에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다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깔아뭉개고, 자기의 잇속을 챙기고, 보다 높은 권력과 부를 지향하며 추악한(하지만 같은 레벨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P상무님께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저와는 2003년에 만나 3년 동안 같이 일했습니다. P상무님은 사내정치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한결 같이 인간을 중심에 둔 관리와 의사결정을 하신 분입니다. P상무님은 칼텍에서 학부를 나오고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분인데, 단지 학력적인 똑똑함이 아니라 진정한 통찰력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또한 윗사람에게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굽히지 않으셨고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부하직원에게 사과할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성숙한 사람이 있다니! 그에 비하면 나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제가 3년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또한 온갖 시련의 상황에서 어떤 길을 가는 가를 보고서 판단한 내용입니다. 그런 분을 이제는 다시 만나 뵐 수 없게 됐네요.

마지막 만남이 생각납니다. 올해 초 P상무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제가 팔당 근처의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식사 후에 일산에 볼 일이 있다고 하셔서 일산까지 데려다 드렸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호수공원에 가서 함께 산책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P상무님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걸 모르던 때였고 당연히 저도 몰랐고요(하지만 그때 이미 간암 말기셨죠).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날은 그냥 시내에서 만나면 됐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는데, 왠지 야외로 모시고 가고 싶더라고요. 왠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팔당까지 갔고 또한 일산까지 거리도 상당했는데 일부러 모셔다 드린 거고 산책도 왠지 해야 할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토요일에 출국하시기 전에 잠시 뵈었는데, 괜히 선물도 드렸습니다.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닌데 왠지 그러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됐네요.

사람에게는 어떤 느낌이 있는 거 같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말이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은 미국에 갈 사정이 안 되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P상무님을 추모합니다. 끝으로, 하단의 글은 돌아가시기 전에 P상무님으로부터 받은 메일 내용 중 일부입니다. 마지막까지 의연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천국에 천사가 한 명 늘었습니다. P상무님, 이제는 마음 편히 쉬시길 바랄게요.

Thanks for praying for me. It pains me to see you so sad, my dear friend. Don't be too sad for me. I am not. I am at peace with this situation.

I struggled with the mystery of life and the universe all my life.

I have been blessed in life with great, loving people (like you), I experienced things to die for, seen and felt glories indescribable. And I am experiencing a perfect peace.

Hanseok, I pray that you too will have this peace and joy. You will see that there is little room for sadness..

PS: 추모곡은 Andy Williams가 부르는 Danny Bo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