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5일

한국 정부의 ‘정부 2.0’과 행안부장관상 수상 소식

먼저,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지루한 얘기 조금만 할게요. 십 만년 전에 웹 2.0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서비스들이 등장하며 닷컴 이후 나름의 광풍이 불었었죠.

거품 논란도 있었지만 그런 양적인 성장이 있었기에 그 결과로(양이 질을 만듭니다) 현재와 같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국내 상황은 단지 서적이나 세미나 광풍만 불었을 뿐, 참신한 서비스는커녕 해외에서 등장한 다양한 서비스들 중 90% 이상이 국내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못했거나 또는 나왔다가 이내 사라져버렸죠.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너무나 잘 아는 슬픈 과거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현재 모바일 서비스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죠.

그런 웹 2.0 시절에 등장한 용어 중 하나가 정부 2.0(Government 2.0)입니다. 전자정부(e-Government)가 정부의 디지털화라면, 정부 2.0은 (웹 2.0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 상호작용과 개방이 주된 특징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정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또한 정부가 플랫폼이 되어 자신의 자원과 기능을 API로 제공함으로써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죠. 물론 그 외에도 여러 특정이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두 가지만 언급해 보았습니다.

정부 2.0에 대해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하나의 다이어그램을 소개하니 참고하세요.


이러한 정부 2.0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국민의 욕구를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하단의 내용은 제가 정리한 개념이라서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1. 국민은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지 알고 싶어한다. -> 투명성/신뢰성의 문제
2. 국민은 정부와 소통하고 싶어한다. -> 의사소통의 문제
3. 국민은 정부의 서비스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어한다. -> 협업의 문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콜라보레이션 ^^)


1번에 해당하는 국민 욕구의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투명성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건, 무엇보다 투명성 부족이 큰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2번에 해당하는 국민 욕구인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투명성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해봐야 욕만 먹을 뿐입니다. 투명성이 있어야 신뢰가 생깁니다. 투명하지도 않고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은 불가한 것입니다. 또한 3번의 국민 욕구이자 성숙된 정부 2.0의 개념인,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서비스를 발전시킨다는 것에는 아예 이를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정부 2.0이 전세계적인 트렌드이다 보니 한국 정부도 뭔가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보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잘 모르시겠지만 공유자원포털이라는 명칭의 Data.go.kr 사이트가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미국 정부의 Data.gov 사이트를 모델로 한 것인데요. Data.gov 사이트는 오픈 정부(Open Government)라는 철학 하에 2009년 5월 미국 정부의 CIO인 Vivek Kundra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Data.gov 사이트를 통해 정부가 가진 각종 자원을 공개함으로써,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응용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47개의 데이터셋으로 시작하여 현재 40만개가 넘는 데이터셋을 제공하고 있으며, 1천 개 이상의 앱이 존재합니다. 인기 있는 데이터셋은 조회 수가 15만건이 넘기도 합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사이트인데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 정부도 Data.gov와 유사한 Data.go.kr 사이트를 오픈하고 얼마 전 제1회 공공정보 매쉬업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저는 정부가 그런 대회를 하는 지도 몰랐는데, 지난 11월에 대회 주관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스마트TV 강의를 하러 갔다가 알았습니다.

그 후 친하게 지내는 황재선님께 팀을 만들어 응모를 해보자고 했더니, 황재선님이 재빨리 기획을 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고 지난 주에 결국 대상(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았네요.

관련기사: 똑똑한 농부 `스마트파머', 매쉬업대회 행안부장관상 차지


저는 동기부여와 문서 수정, 기획서에 포함될 몇 가지 핵심을 짚어준 거 밖에는 없습니다. 프로젝트 리더는 황재선님인데, 개발자 출신이면서 기획도 잘하고 비즈니스 감각도 있는 동생입니다.

10년 전 제가 마이크로소프트 기술을 다루던 시절에 Microsoft MVP로 만나서 이후 삼성전자에서 잠시 같이 일하고 소프트뱅크에서 2년 정도 일한 후 각자의 일을 가고 있지만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현재 황재선님은 LG전자에서 모바일 서비스/플랫폼 관련 일을 하면서 LG전자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황재선님에 대한 칭찬은 이 정도로 마치고.

비록 함께 수상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홍보 부족으로 업계 사람들조차 그런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일반인은 더 하겠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야 정부 2.0이 연구분야 중 하나이니까 공유자원포털 사이트와 대회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일반 국민들은 어떻겠습니까?

성숙된 정부 2.0에서 이런 국민과의 협업이 궁극적인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전에 먼저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엄청난 노력(천지가 개벽할만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가능할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투명성/신뢰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정부가 뭘하든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상을 한 입장에서 쓴 소리를 하게 돼 송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만, 원래 성격이 직설적이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제대로 구현된' 정부 2.0은 민주주의를 더욱 더 발전시켜 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 자체로는 참 좋은 개념입니다. 다만 현 정부는 일의 선후와 경중과 완급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먼저 정부 2.0을 구현할 자격을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것이 안 되면 뭘 하든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