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6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사건의 의미와 리스크

8월 15일, 모바일 산업 아니 IT 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모토로라는 지난 1월에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토로라 모빌리티, 기타 사업을 담당하는 모토로라 솔루션즈로 분리가 된 바 있는데 그 중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구글이 125억 달러에 전격 인수한 것입니다.

관련 뉴스: Google to Acquire Motorola Mobility for $12.5 Billion

국내 뉴스도 쏟아지고 있으니 간단한 소식은 전해 들으셨을 거 같습니다. 제가 제목에 적은 것처럼 이번 인수는 ‘사건’입니다. 특히 세계 수위의 휴대폰 제조사들을 갖고 있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구글이 플랫폼 경쟁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까지 진출함으로써 애플과의 전면전에 뛰어들었다는 걸 뜻합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지금 모바일 플랫폼 빅2 중 하나인데, 그것으로 만족하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구글은 욕심쟁이~

애플은 지금까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를 절묘하게 결합하는 전략으로 타업체들을 압도해왔고,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와 함께 업계 최고의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지난 2분기 휴대폰 시장 전체 수익의 66%를 애플이 독식), 전세계 기업 중 시가총액 1위(3천 372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인수의 함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1. 구글은 이제 제조사다. 구글 또한 애플처럼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함으로써 보다 완성도 있는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

2. 최근 안드로이드가 특허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 모토로라를 인수함으로써 많은 특허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3. 사실상 기존 파트너인 삼성전자, LG전자, HTC 등은 이제 경쟁사가 됐다. 그들에겐 꽤 나쁜 소식이다.


1번은 너무 뻔한 얘기이니 제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거 같고요. 2번 특허 문제에 대해 부연하자면,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개발한 업체이고 수많은 휴대폰 관련 특허가 있습니다.

이제 어떤 업체가 구글에게 특허로 시비를 걸어오면 모토로라의 특허를 뒤져 상대 업체가 침해한 부분을 찾아 맞고소하면 됩니다. 여전히 소송이 벌어지겠지만 많은 경우 크로스라이선스로 합의할 수 있을 겁니다. 구글이 당면한 가장 큰 리스크로 특허 침해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한 무기를 확보하게 된 것이죠. 이번 인수가 특허만으로도 꽤 값어치를 할 거라고 보여지네요.

그리고 3번. 국내 업체들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봐야 주가, 매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추가 글] 실제로 주요 제조사들이 모두 환영의 뜻을 표했네요(링크). 그런데 링크한 삼성, 소니에릭슨, HTC, LG 사장들의 글을 한번 보세요. 하나 같이 주요 문장이 똑같죠? 다들 그렇게 얘기하기로 입을 맞춘 건가요? 특히 삼성과 HTC 사장의 글은 완전히 동일해요! 마치 받아쓰기한 거 같아요. ㅎㅎ 재밌네요. 해외에서도 제조사들의 반응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이기에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안드로이드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애플의 최대 경쟁자로 부각된 상황에서 큰 충격일 겁니다.

물론 구글이 앞으로도 타업체들이 안드로이드를 쓸 수 있도록 하겠지만, 안드로이드 기기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구글과 긴밀히 협조를 해야 합니다. 구글 서비스 호환성 심사와 안드로이드마켓 탑재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그런 구글이 이제 모토로라와 하나입니다. 함께 하자니 참으로 찜찜한 상황이고 함께 하지 않자니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이번 인수로 안드로이드의 중립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추가 글] 물론 그렇지 않을 거라고 현재 구글과 제조사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그럼 모토로라는 손만 빨게 할 건가요? 모토로라가 폰 사업을 접으면 모르겠지만 폰 사업을 한다면 경쟁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삼성에게는 이럴 때를 대비하여 플랜B로 키워온 바다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너무 힘이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윈도폰7를 밀자니 윈도폰은 지난 분기에 바다폰보다도 덜 팔렸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최근 망고 버전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글쎄~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상당한 반사 이익을 얻을 거 같습니다. 윈도모바일의 악몽 그리고 잘 나가는 안드로이드 때문에 그 동안 제조사들이 윈도폰을 왠지 꺼리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윈도폰 제조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삼성은 당분간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느라 골머리 앓을 거 같습니다. 그나마 삼성은 바다라도 있죠. LG는 이제 어떡하나요? ㅠㅠ

구글은 모바일의 절대 강자인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3~4년간 오픈 전략으로 반대 세력을 규합하여 세를 키운 다음, 이제 구글 스스로 맹주를 자처하며 제대로 본게임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구글-모토로라의 폰이 진짜 안드로이드폰이고 파트너들의 폰은 호환폰이 되는 거죠. 분명히 그런 전략을 갖고서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 1월에 쓴 "구글이 넥서스원을 출시한 진짜 이유는?"이라는 글을 참고로 읽어 보십시오(1년 7개월전 글이니 감안해서 봐 주세요). 구글의 플랫폼 전략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한 글입니다. 물론 넥서스원은 시장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플랫폼 통제를 향해가는 하나의 시도라고 본다면 구글의 향후 전략을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구글에게 있어 이번 모토로라 인수가 장미빛 미래를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리스크가 있죠.

1. 구글은 제조업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터넷 기업인 구글과 제조사인 모토로라의 기업 문화가 제대로 융합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인수합병 후 해당 기업의 경영 실적을 유지하는 것만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구글이 침체된 모토로라를 구원해서 다시 재기시킬 수 있을까요?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토로라에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플을 보면, 하드웨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하청업체들을 통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설계, 부품 구매, 품질은 애플이 담당하고 생산은 완전히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죠. 구글 또한 애플의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또 구글답고요. 모토로라 직원들, 걱정이 많을 거 같습니다.

2. 구글이 모토로라를 다시금 부흥시키고 보다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기기를 출시했다고 하더라도, 애플과의 경쟁에 있어 충분한 건 아닙니다. 애플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결합뿐만 아니라 아이튠즈 스토어라는 전세계 1위의 유료 디지털 콘텐츠 마켓플레이스를 갖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음원, 비디오, 전자책 등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반면 구글의 경우 최근 전자책, 음원 사업 등을 개시한 상태이긴 하지만 애플에 비해 콘텐츠 사업이 부실합니다. 과연 구글이 애플과의 경쟁에서 필수 요소인 콘텐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미래 IT 산업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 사업의 절묘한 결합이라는 과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한데, 구글은 이번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한 단계 나아간 거 같습니다. 물론 리스크가 상당한 인수이기는 합니다만, 구글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존중 받을 만 하다고 봅니다. 또한 인수합병에 엄청나게 인색한 삼성, LG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구글은 모토로라를 재기시켜 하드웨어 사업에서 성과를 내야하고, 더불어 애플과의 전면전을 위해 그 동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콘텐츠 마켓플레이스 사업도 성공시켜야 합니다.

이 어려운 과제를 구글이 풀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른 기업이라면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겠지만, 구글이기 때문에 응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런 기업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 구글의 보이지 않는 큰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