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1일

MSX와 Apple ][의 추억

(1983년에 창간된 월간 컴퓨터학습 창간호 표지: 그림 출처)

지난 4월 10일에 강의 때문에 대전에 갔었습니다. 요즘 강의 청탁이 종종 있는데, 이번에는 청중이 좀 특별했죠. 전국에서 모인 180여명의 중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특허청이 지원하는 ‘IP 영재기업인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습니다. 올 초에 학생들을 선발하여 현재 1기 교육이 진행 중이고요. 주로 방학과 주말, 온라인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왠지 거창한데, 핵심 목적은 아이들한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발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아이들이 직접 특허를 출원하도록 하는 것이죠. 중고등학생 때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를 가진다니 꽤 멋진 일입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각각 절반의 학생들을 맡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에 1박 2일의 연합 캠프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스마트폰을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이죠.

그런데 중고등학생들이라고는 해도, 학교에서 단 1명씩 추천을 받은 후 심사 과정을 통해 5:1의 경쟁을 뚫고서 합격한 학생들이니 그리 만만한 청중은 아니죠. (무서버라~)

담당자 분께서 자기소개를 스토리텔링 형태로 해달라고 하셔서, 어떤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어떻게 컴퓨터를 하게 됐고, 어떻게 기뻤고, 어떻게 좌절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과거 자료를 찾아 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자료들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중1때부터 컴퓨터에 미쳐서 고3때까지도 공부 안하고, 프로그래밍해서 돈 벌고 잡지에 원고 쓰고 그랬거든요. 당시에 월간지 ‘컴퓨터학습’에서 만든 PC클럽의 후배들이랑 단행본을 함께 집필한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대해 아직도 얘기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그림에 저자 명단이 나와 있는데요(그림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당시에 저는 성을 ‘유’로 표기했었습니다). 함께 책을 썼던 후배들 중에서 여러분이 알만한 사람을 꼽는다면, 김국현(현 MS 부장), 김학규(현 IMC 게임즈 사장) 정도겠네요. 똑똑한 동생들이라서 지금도 다들 잘 나가고 있죠.

의심할 여지 없이 MSX는 8비트 컴퓨터의 전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스키가 함께 표준 규격을 만들었고, 해당 규격에 따라 여러 회사에서 컴퓨터를 출시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우 IQ 1000/2000라는 기종으로 알려졌죠.

MSX는 나름 컴퓨터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사업적으로는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종된 지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전세계에서 여러 커뮤니티들이 활동하고 있고,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아직도 MSX 에뮬을 종종 이용하곤 합니다.

MSX보다 더 유명하고 더 성공한 8비트 컴퓨터가 바로 Apple ][입니다. (Apple II라고도 표기하지만 Apple ][로 써야 제 맛이죠. Apple ][ 유저였다면 다들 알 듯.)

당시 클럽 멤버들 중에서 (제 기억에는) 저만 양다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MSX와 Apple ][를 둘 다 다루었죠(그 후로 쭉 기술 양다리, 문어다리죠. 생존의 비결이랄까요 ㅎㅎ). 고3때 MSX 서적을 출간한 후, 대학 1학년 때는 Apple ][e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그때 잡지에 광고로 나왔던 사진을 어떤 분이 스캐닝해서 올려 놓으셨네요.


앞줄에서 왼쪽 세 번째가 접니다. 1989년 대학 1학년 때의 사진이죠. ㅠㅠ

현재 저자들 중에서 한 명은 경향신문사 기자이고, 한 명은 벤처기업하고, 또 한명은 벤처기업 다니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업계에 있지 않거나, 하는 일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네요.

20~30년이 된 옛날 얘기를 쓰다 보니,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참 오랫동안 컴퓨터 시장의 강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는 왜 한국에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안 나오느냐고 하는데, 미국 PC 30년 역사상 딱 둘 뿐입니다. 전세계에서도 둘 뿐이죠. 그 두 사람은 서로를 모방하며 배우며 발전해왔습니다.

빌 게이츠는 그 동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충분한 성공을 누린 후 은퇴를 했고, 스티브 잡스는 아직도 한이 있어 PC에 뒤이은 ‘모바일 시대의 도래’라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승부수를 펼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전략은 바로 30년간의 경험과 통찰로 만들어진 것이죠. (여우로 치면 구미호 같은 존재랄까요?)


글을 쓰다 보니 8비트 컴퓨터 시절부터 스티브 잡스를 지켜봐 왔던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이번 글과 주제가 다르고, 스크롤의 압박도 있으니,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댓글 10개:

whiterock :

아련한 추억의 이야기들이겠네요. 기대됩니다. :)

어렸을 때 접한 컴퓨터가 컴퓨터 학원에 있는 삼성 SPC-1000, 1500이라 크고 나서 무지 아쉬웠던 기억이 있네요.

바비(Bobby) :

To whiterock님/ SPC-1000은 제가 가장 아꼈던 PC였어요. 제 첫 PC가 FC-100이었고, 두번째가 SPC-1000이었죠. 세번째가 Apple ][e, 네번째가 MSX2였어요.

SPC-1000으로 돈 벌어서 Apple ][e를 샀었죠. 그런데 아버지 사업 부도나서 SPC-1000에 빨간 딱지 붙었을 때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선명한 슬픈 기억.

우무리 :

저도 84년인가.. 집에 삼보 트라이젬에서 만든 애플이 있었던 기억이.. 제가 유치원때였어요 -_-;;

지금 저도 일본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답니다.. ^^

익명 :

SPC-1500, IQ-2000 ... 카세트 테이프에 카운트 맞춰서 베이직 프로그램 저장하고 다시 로딩하고 그런 재미도 있었죠. 저는 초등학생때라 IQ-2000에 재믹스팩을 꽂아서 게임하던 재미도 쏠쏠했어요. ㅋ 잡지 광고에 나오던 X-II의 까만 디자인에 몹시 들뜬 기억도...

멜로디언 :

ㅎㅎㅎ 저런 걸 스캔해서 올려놓은 분들이 정말 대단하네요. 추억은 방울방울.

익명 :

저도 Apple ][ 가 있었네요..ㅠㅠ
그때 많이 보던 컴퓨터학습.. 정말 좋아했던 잡지였습니다.
그당시 초등학생이였는데 컴퓨터학습에 올라온 코드를
하나하나 손으로 쳐서 프로그램 돌려봤던 아련한 추억..

CATALOG 치는 단축키가 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A Plus 라는 컴퓨터 가게도 있던 기억이 나네요 ^^
이 덕택에 지금도 컴퓨터 업계에 종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legantCoder :

잡스의 젊을 시절 입은 양복이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아 보이는 것은 유행이 한번 돌았기 때문인 걸까요 ^^

함부르거 :

MSX 파워업테크닉 구매자였는데 이제보니 저자이셨군요!!! 본가에 책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제가 컴퓨터를 맨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사촌형의 애플이었고 처음 가졌던 컴퓨터가 MSX2 였습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 것을 결심했구요. 두 사람이 저한테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정말 단순히 추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감회가 있습니다.

재철 :

추억 사진보니...형님 그때가 좋았어요. ㅋㅋ 지금의 오피스 프로그램의 원천인 'Apple works'를 리뷰한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QDONG :

안녕하세요 류대표님! 새 포스트 보자마자 댓글답니다. 스마트폰 강의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토리텔링 PPT 또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시험 끝나고 지름신의 유혹을 어떻게 견뎌야할지 참 걱정입니다(웃음) 아참, 저는 나이 '꽤 있어 보이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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