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7일
한계격파의 정신, 또는 무모한 풋내기
이 글은 아래의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참으로 다의성을 가진 말입니다.
부자가 천당 가는 것처럼 힘들다는 말이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게 된다는 말이고, 하지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극복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고, 다른 사람은 다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난 아니다라는 생각은 무모한 객기일 수 있다는 말이죠.
말 하나에도 숨어있는 뜻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빠져나가기 힘든 인생의 함정 하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1번. 나 또한 예외일 수 없기에 순순히 받아들이겠다?
2번. 패닉 상태에 빠져서 완전히 콘트롤 불능 상태?
3번.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한계격파의 정신?
4번. 그렇지만 나만은 예외일거라는 풋내기 정신?
1번은 자기 삶에서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는 것의 인정일 뿐이죠. 그리고 2번은 4번과 함께 최악의 선택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조차 판단하지 못하며 결국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상당한 피해를 주게 되죠.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1번과 2번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리고 선택을 미루면 결국 어떻게든 선택이 되어 버리죠. (-> 인생의 비극 중 하나)
그렇다면 3번과 4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겉모습으로는 얼핏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 즉 그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파격적이어야 하는가 하면, 그저 평범한 노력으로서는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든, 관리이든, 상처받은 영혼을 극복할 수 있나요? 아는 것이 상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올바른 사랑을 하고 올바른 관리를 할 수 있나요?
그것이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엄청난 한계격파의 정신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 및 시행착오가 필요하죠. 참고로, 그래서 저는 사랑의 경우 아직까지도 (전체 완성도를 10단계로 볼 때) 여전히 1~2단계에서 헤매면서 노력 중이고, 관리는 10년 이상 실수하고 시행착오 하다가 한 3단계 정도에 도달했고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관리의 경우 올바른 관리를 받아본 경험이 단계 상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바른 관리를 받아보지 못했다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러므로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경험을 하는 곳이 몹시 중요합니다.
어설픈 풋내기 정신은 더 큰 상처만을 가져올 뿐이죠. 인생의 함정을 간과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가운데, 한계격파의 정신으로 지혜롭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노력을 이해하시는 분들께 동료로서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계를 격파하자구요!
댓글 1개:
geek이라는 존재감이 있는 것도 한계격파 정신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해관계에 얽혀서 문제해결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긱한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이해관계를 떠나있기 때문이죠.
형님, 새해 복 대따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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