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머니투데이] 내가 사랑하는 삼성을 떠나는 이유
그 내용이야 직장인이라면 다들 부정하기 힘든 사항들이니 별다르게 코멘트할 건 없습니다. 다만 행동을 취한 이가 신입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과장(경력 8년 이상) 정도의 직급이었다면 보다 설득력이 있고 유의미했을 거 같습니다. 신입사원의 경우, 그 자신의 인내심의 부족을 환경 탓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많은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의 퇴직율이 상당히 높은데 이것은 분명히 기업이 반성해야 할 사항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놀라운 점은, 이번 일이 외부에 공개되고 이렇게 언론에까지 소개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예전의 삼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삼성에게 있어서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이런 일을 조직 쇄신의 계기로 삼으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한국의 대기업들은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하였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삼성에서 오히려 이번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지만 구태의연한 경영지원, 정치만 하는 임원들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관련기사: [조선일보]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위의 기사 내용 중 특히, "한국 경제 미래 걱정돼"라는 소제목에 해당하는 섹션을 꼭 읽어 보십시오.
댓글 3개:
An excellent observation. Samsung has developed an effective system for attracting and utilizing good people. But it must next find a way to keep individuals with such exceptional insight and courage (such as this 신입사원) without dulling their edge. The question is, how will this company keep up with global competitors that do? Undoubtedly, top executives at Samsung must ask this question all the time. There is a dilemma here that is too big for an individual.
다음은 "내가 사랑하는 삼성을 떠나는 이유" 전문
1년을 간신히 채우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재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 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 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회사를 통해서 겨우 이해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니부어의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되었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 속 개구리의 비유입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문화를 이루고, 문화가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변혁의 움직임이 있으려니, 어디에선가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려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주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 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입니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인사팀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이거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에, 다들 이번 주에 어디가야 할까 고민하고,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개념 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열정 하나만 믿고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병도 1년 만에 월급쟁이가 되어갑니다.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저는 음식점에 가면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종업원들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종업원들의 열정이 결국 퍼포먼스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당 서현역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가면 얼음판에 꾹꾹 눌러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주문할 때부터 죽을 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힘들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돈 내고 사는 것인데도 오히려 손님에게 이런 건 왜 시켰냐는 눈치입니다. 정말 오래 걸려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도, 미안한 기분도 없고 먹고 싶은 기분도 아닙니다.
일본에 여행 갔을 때에 베스킨라빈스는 아닌 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에서 똑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습니다. 꾹꾹 누르다가 힘들 타이밍이 되면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종업원이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미는 손도구로 얼음판을 치면서 율동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 손님들은 앞에 나와서 신이나 따라하기도 합니다. 왠지 즐겁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맛있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아이템입니다. 같은 조직이고, 같은 상황이고, 같은 시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루하루 적응하고 변해가고, 그냥 그렇게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제가 두렵습니다.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지 않습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에 반복되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직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고쳐보고자 최선의 최선을 다 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 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들으시면 회사 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직을 가던 매월 셋째 주 금요일에 제가 명확하게, 저를 위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웃으면서 동참할 생각도 없고 그때그때 핑계대며 빠져나갈 요령도 없습니다.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에 남아서 하루라도 더 저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이 회사는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 것 하나 있겠냐만은 제발 저를 붙잡고 도와주시겠다는 마음들을 모으셔서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사랑해서 들어온 회사입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 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 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라고 믿기에, 현재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 유일한 순간이라고 믿기에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5월 2일
ex-삼성맨입니다. 제가 아는한 삼성은 신입사원의 퇴직원을 외부로 유출 시킬만큼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신입사원이 쓴 글이 마치 '경영혁신팀'에서 날아든 문서 같다는 느낌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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