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7일

한국 IT업계의 2008년 M&A는?

관련기사: [전자신문] 국산 SW업계 M&A '열풍 속으로'

열풍까지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제 한국 IT업계에서도 선진국들처럼 M&A가 중요한 비즈니스 툴로서 활용될 때가 되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옵니다만, 점점 더 M&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2008년이 SW기업들뿐만 아니라 인터넷기업들간의 M&A가 활성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라고 적어봅니다만, 사실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절반 이상입니다. ^^

다만 상황적으로 그러한 환경이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M&A 계절을 대비하세요. 누군가의 몸값이 올라가고 누군가는 성공하겠죠. ^^

언어장애자의 고백

관련 글: 저는 말더듬이 입니다. 긴 방황의 시간이었습니다 (글쓴이가 글을 삭제했네요)

이 글을 보고서 제 얘기를 적어봅니다. 고백하건대, 저 또한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심각한 유창성 언어장애를 겪었고 아직도 100% 완쾌된 상태는 아닙니다.

유창성 언어장애에는 다양한 증상이 있는데, 저의 증상은 말막힘입니다. 특정 상황에서 전혀 말이 나오지 않는 증상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기로는 국민학교 다닐 때 발병을 했고, 이후에 전혀 대중 앞에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대화는 가능했고요(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장애는 있었죠).

“여보세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집 전화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 급우들 앞에서 전혀 책을 읽을 수 없었고 자기소개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발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컨대, 수학여행 때 밤에 인원 체크를 하는데 번호를 말하지 못해서 반 전체가 기합을 받기도 했죠. (그리고 이런 에피소드는 천 개가 넘을 겁니다)

이런 증상은 대중 앞에서 경직되거나 떨리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대중을 앞에 두고 얘기를 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대중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은 100%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없는 부분입니다.

언어장애 문제로 인해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국민학생 때부터 웅변 학원을 몇 번이나 다녔고, 중학생 때는 서울에 몇 군데 없는 언어치료 학원도 다녔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스피치 교육업체인 한마음변론학원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학원을 다니면 조금 괜찮아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요요현상처럼 더 심해지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래서 그런 학원을 불신하게 되어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때도 여전히 힘들어서 2학년 때는 학교를 그만 두려고 한달 이상 학교를 가지 않기도 했었죠. 참 사연이 많은 시절이었습니다.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려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졸업을 하고 대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다행히 대중 앞에서 책을 읽을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상처로 남은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입해서 활동하던 모문학 동아리의 정기모임에서 회장 형이 회지에 실린 시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너무 창피한 나머지 그 다음 날로 동아리 활동을 그만 둔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기억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죠.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은 다들 저를 이상한 언어장애가 있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괴심과 극도의 우울함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결국 죽지는 못했습니다. (죽을 운명이 아니었나 봐요. ^^)

그러던 제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신이 있는 분야가 생기고 사람들 앞에서 그것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면서 “정말 조금씩” 나아졌죠. 언어장애 문제와 관련해서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된 계기는, 1996년에 한국컴퓨터에서의 했던 비주얼베이직 강의로 기억합니다. 그것이 대중 앞에서는 처음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많이 망설였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당시 저는 개발자로서 비주얼베이직을 너무 좋아했기에, 신버전의 새로운 기능들을 업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어 강의를 맡았는데 제가 생각해도 신이 나서 강의를 참 잘했습니다. 한국컴퓨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내 강의였는데 20시간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강사료도 꽤 받았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정말 잘 알고 있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잘 할 수 있구나.”

제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자유의지로 하는 말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등 이미 정해진 말은 여전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휴대폰이 대중화 되어서 “여보세요”라는 말을 더 이상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요. 어렸을 때 이후로 전화를 참 싫어하지만 휴대폰은 어떤 의미에서 저에게 반가운 기기입니다.

이후 제가 말막힘이 발생하는 상황과 아닌 상황을 정확히 깨닫게 되어 콘트롤을 하고 있습니다. 링크한 글에도 있다시피 어렸을 때 고쳤더라면 완쾌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저에게는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짐입니다. 다만 과거와 달리 90% 정도는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의 장애에 대해 몇몇 사람들한테 얘기한 바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세히 얘기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동창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요.

혹시 유창성 언어장애 증상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저한테 연락을 주십시오. 제 경험을 좀 더 세밀하게 알려드리고 제가 했던 모든 노력에 대해 공유하겠습니다.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한국도 선진국들처럼 언어 치료가 조기에 가능한 환경이 빨리 조성되어(학교마다 언어치료사를 배치하는 등) 성인이 되어서까지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심리적 상처로 남고 사회 생활에도 많은 지장을 주니까요.

무엇보다 심리적 데미지로 인한 자아 불신 및 사회성 상실이 심각한 문제이죠.

PS: 제가 발병한 원인 및 치유 과정에 대해서 보다 깊은 얘기들이 있은데 지면 관계상 많이 생략하였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연락주세요.

한계격파의 정신, 또는 무모한 풋내기

그림출처: http://cpd.engin.umich.edu
이 글은 아래의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참으로 다의성을 가진 말입니다.

부자가 천당 가는 것처럼 힘들다는 말이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게 된다는 말이고, 하지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극복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고, 다른 사람은 다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난 아니다라는 생각은 무모한 객기일 수 있다는 말이죠.

말 하나에도 숨어있는 뜻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빠져나가기 힘든 인생의 함정 하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1번. 나 또한 예외일 수 없기에 순순히 받아들이겠다?
2번. 패닉 상태에 빠져서 완전히 콘트롤 불능 상태?
3번.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한계격파의 정신?
4번. 그렇지만 나만은 예외일거라는 풋내기 정신?

1번은 자기 삶에서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는 것의 인정일 뿐이죠. 그리고 2번은 4번과 함께 최악의 선택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조차 판단하지 못하며 결국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상당한 피해를 주게 되죠.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1번과 2번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리고 선택을 미루면 결국 어떻게든 선택이 되어 버리죠. (-> 인생의 비극 중 하나)

그렇다면 3번과 4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겉모습으로는 얼핏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 즉 그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파격적이어야 하는가 하면, 그저 평범한 노력으로서는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든, 관리이든, 상처받은 영혼을 극복할 수 있나요? 아는 것이 상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올바른 사랑을 하고 올바른 관리를 할 수 있나요?

그것이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엄청난 한계격파의 정신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 및 시행착오가 필요하죠. 참고로, 그래서 저는 사랑의 경우 아직까지도 (전체 완성도를 10단계로 볼 때) 여전히 1~2단계에서 헤매면서 노력 중이고, 관리는 10년 이상 실수하고 시행착오 하다가 한 3단계 정도에 도달했고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관리의 경우 올바른 관리를 받아본 경험이 단계 상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바른 관리를 받아보지 못했다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러므로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경험을 하는 곳이 몹시 중요합니다.

어설픈 풋내기 정신은 더 큰 상처만을 가져올 뿐이죠. 인생의 함정을 간과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가운데, 한계격파의 정신으로 지혜롭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노력을 이해하시는 분들께 동료로서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계를 격파하자구요!

2008년 1월 2일

사랑과 관리의 공통점

[질문] 어렸을 때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답변] 통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죠

[질문] 사원 시절에 제대로 관리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간부가 되어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있을까요?
[답변] 통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죠.

아, 그렇게 슬픈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