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지음, 임정근 옮김/참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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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순진한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주는 책 제목이죠. 번역서의 제목이 원서의 제목인 “You’re Too Kind: a Brief History of Flattery”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책을 소개한 기사 내용 중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스텐겔은 인간에겐 아부의 DNA가 있고, 아부의 기술은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아부는 우리의 허영심을 향해 날아와 꽂히는 열 추적 미사일과 같다”는 것이다. (하략)
저 또한 “아부”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부와 칭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부와 칭찬을 굳이 구분 짓고 싶겠지만, 사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잘 구분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은 칭찬에 굶주려 있습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사람은 칭송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히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그것을 마다할까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언제나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깨닫고 행동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수”의 사람들이 희귀성의 원칙에 의해 성공하는 것은 일종의 법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지 편집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책도 출간하는 것이겠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타인에게 원하는 그것을 타인에게는 잘 행하지 않습니다. 칭찬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충성도 그렇고, 이심전심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너무 많죠. 그래서 사람은 이중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또는 미숙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괜찮을 거 같습니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일수록 이런 책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갇힌 껍질을 깨어서, 세상이 나쁜 사람들로 가득 차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니면 나쁜 사람들에 의해 (알게모르게)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정치력, 기회의 쟁취, 충성심 등의 비호감 기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