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입니다. 서글픈 느낌의 시입니다만, 제일 마지막의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그리고 음악은 1970년대 영화인 ”슬픈 로라”에 삽입되었던 La Tristesse De Laura라는 곡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팝 피아니스트인 Patrick Jubet의 연주곡인데, 차분하고 센치해지는 음악입니다. 아래의 바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링크한 음악은 배경음으로 기차 소리가 나오는, 편곡된 것입니다. (좀 더 센치한 분위기랄까요?)
서글픈 사랑의 기억이 있으신 분들은 시와 음악을 한번 감상해 보시죠.
왜 이런 시를 소개하냐고요? 왜냐하면,
이제 가을이니까요.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댓글 6개:
음악과 시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이네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싸늘한 그 무엇이 온몸을 한번 쓸어주고 가는군요. 이 느낌...정화된다고 표현하기에는..웬지 서글픈 이 느낌..
To 익명님/ 아마도 제가 모르는 분이시겠죠.
그렇지만 유사한 느낌을 함께 경험하였다는 사실은 왠지모를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잠시나마 "감정의 정화"를 함께 공유하였다는 사실이 고맙습니다.
슬픔은 평등하다.
그랬었군요. 이걸 잊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아픔을 모르던 천진한 웃음이 슬픔을 아는 눈동자를 가지게 될때까지.
누군가 '슬픔은 평등한거야'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정호승님의 시를 다시 읽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Hotel Rewanda를 보고
이 시를 다시 읽으니, 다른 생각이 드는군요.
...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
한동안, 신념에 대한 회의와,
제 수많은 부족함 속에서, 방황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Hotel Rewanda와 "슬픔이 기쁨에게"를 통해 정리?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동훈 올림
아는 분들이지만 형평성상 그냥 존대말로 쓰죠. ^^
To sunny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입니다. 남녀간의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등.
"슬픔은 평등하다"는 말도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좋아하고 있습니다.
To 이동훈님/ 책 좋아하시죠? 책 많이 보세요. 그 어떤 매체보다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이 책인 거 같습니다.
방황하는 마음을 책이 잡아주곤 합니다. 결국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인생 선배님의 통찰을 배우는 것이니까요. ^^
이 음악과 시를 평생 기억할것 같습니다.
무관심한 너의 사랑....이라
추억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을
자유롭게해줘야겠네요
억지를 부렸나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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