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해라체(반말)로 글을 썼습니다. 많은 블로그들의 글들이 그러하고, 또한 제가 오래 전부터 미디어 매체의 칼럼이나 기사 등에 기고를 해왔는데, 매체에서 요구하는 기본 형식이 해라체였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어투이기에 그냥 해라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대하는 듯한 말투가 저 스스로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제가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어떤 분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 책은 위대한 작가인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서문을 처음 보았을 때 합쇼체로 쓰여진 어투와 그 내용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용의 일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저 월터 힐튼의 말처럼 “내 말이 주는 참된 인상과 실제 내 모습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에, 오직 소리를 높여 자비를 구하며 힘껏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한 가지 비난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즉 누구도 저에게 “자기는 아픔을 느낀 적도 없으면서 나의 상처를 가지고 장난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략…)
고통이라는 적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략…)
해당 책은 기독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또는 저 같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의 내용에 대해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책 자체라기 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렇듯 독자를 존중하는 느낌을 팍팍 주는 책을 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칼럼 등 편집 정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라체를 써야 하는 경우, 그리고 아무래도 합쇼체가 어울리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제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합쇼체를 쓰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글에서 느껴지는 외관상의 힘은 줄어들 수 있으나, 그것은 감수할 것입니다.
더욱 편한 마음, 존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댓글 4개:
"자기는 아픔을 느낀 적도 없으면서 나의 상처를 가지고 장난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정도로 타인의 아픔을 객관화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일거 같아요.
말씀하신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먼저 경험을 가지신 사부(?)라는 면에서는 해라체로 하실수도 있겠으나 합쇼체로 하신다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면에서 필자님이 더욱 존경스럽네요...
이전에 문체의 장점이라면
마치 동료나 선배가 이야기해주듯
친근하고 때로는 자극이 되는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조금 지나면 익숙하여지겠지만...^^
저도 그리 많지는 않지만 칼럼이나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보통체(반말)로 작성을 해왔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읽는이가 기분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객관성을 높여야 하는 경우나, 혹은 제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라는 생각으로 지내왔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경어체 사용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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