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9일

머슴론

관련기사: [연합뉴스] 전북도공무원 내부망 이용 도지사에 '쓴소리'

위 기사는 한 공무원이 자신의 무력한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의 평범한 많은 회사(조직)에서 흔히 접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해당 공무원이 쓴 글 중 일부를 한번 보세요.

한 머슴이 막 마당을 쓸려 하는데 주인이 마당을 쓸라 성화입니다. 다 쓸고 장작 패러 가려는데 주인마님이 마당을 또 쓸라네요. 금방 쓸었다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쓸 것도 없으니 시늉만 내었죠. 그런데도 도련님도, 아씨도 색깔만 틀린 빗자루를 주며 이걸로 쓸면 더 깨끗하다며 또 쓸랍니다. 해질 무렵 주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마당을 보여주며 우리 집이 얼마나 깨끗하냐며 한껏 자랑합니다.

혹시 이런 조직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런 조직은 대개의 경우 고위층 몇 사람의 문제라기 보다는, 조직문화가 그런 것이죠. 즉 권한위임(empowerment)의 가치를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실행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잘 판단해 보세요. 그것이 만일 직장상사 한 명의 문제라면, 그 사람이 이직하거나 짤리거나 부서 이동할 때까지 참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상부에 그런 사람들이 쫙 깔렸으면, 다음의 넷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선택1) 조직의 입장에서 착한 머슴이 되는 것: 그래야 고과가 잘 나오고 연봉도 오르고 승진해서 머슴을 부리죠. 머슴을 원하는 문화는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그 조직을 유지하는 시스템 자체인 것이죠.

선택2)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 임원이 되면 조금쯤은 가능할 수도 있겠죠. 사장과 친하다는 가정하에. 그런데 기존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임원이 되나요? 사원, 간부 레벨에서 조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무모한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대부분은 실패하고 세계관과 성격이 나빠질 뿐입니다. (그리고 조직문화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더 강해집니다.) 권한이 없는데 바꾸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숭고한(?) 뜻을 존중하고픈 마음은 있습니다. 비록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이지만.

선택3) 조직을 나가는 것: 나가서 무조건 잘 되세요. 아니면 착한 머슴들이 당신을 패배자로 치부하며 비웃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을 닥치게 하세요.

선택4) 착한 머슴도 못 되고 나가지도 못하는 것: 위의 세가지 선택들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이것을 선택한 것이 되죠. 이것은 언제나 최악의 선택입니다. 당신은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조직에 의해 강제 퇴출됩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여러분이 처한 문제가 직장상사 한 사람 때문인지, 아니면 조직의 문화 및 시스템 자체가 그런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하겠죠. 저는 후자의 상황을 가정하고 위의 글을 쓴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입장에서는 3번 강추이며, 조직이 바뀌기 위해서는 최고위층으로부터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수입니다.

어쨌든 글이 좀 슬프죠. 현실이 그래요. 그래서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적응하든가, 바꾸든가(권한이 있을 경우에 한함), 떠나든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참 강력해요.

댓글 5개:

익명 :

'권한이 없는데 바꾸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 이 한줄이 압권이네요. ^^

익명 :

어떻게 보면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주제지만...
꼭 회사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뛰쳐나온 사람으로서, 저것을 일찍이 느꼈기 때문이지요.

Adrian Monk :

이상하게도 한국의 대부분 사회는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상황이 거의 들어 맞습니다.

들어 맞는게 이상한 일인데 말이죠.

익명 :

안녕하세요 류소장님 ^^
역시 피가 되고, 뼈가 있는 말씀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현실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세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좋은 SW로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라 믿었던 제가 많이 바보 같이 느껴진네요 ^^

익명 :

'권한이 없는데 바꾸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 이러한 조직문화 정확히 말하자면 개발환경을 바꾸려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벌써 3번째네요. 지난 2회 모두 다른 조직에서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했지만 변화의 가능성만은 보았고 이것을 키우고 키워 지금까지 올 수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앞으로 더 힘들꺼란거 알고 있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긴 싫습니다.

고집이 철학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면서 삶을 참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네요...

류소장님 블로그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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