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4일

첫 눈을 기념하며: 그림 하나, 시 하나

[그림] Thomas Kinkade의 Block Island


겨울 숲에서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가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댓글 6개:

익명 :

눈이 세상에 다녀가는 이유.
안도현같은 아름다운 시인이 있어서?

필자님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알고 되셨나요?

바비(Bobby) :

시를 좋아해서(아니 사랑해서) 시집들을 좀 갖고 있어요. 가끔 시집을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특히 안도현님의 시는 예전에 칼럼에서 인용한 적도 있는데.

"짠한" 무엇이 있죠.

익명 :

첫 눈이 왔다고 좋아할 것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후로 갑자기 날씨가 무지 추워졌습니다...

익명 :

기다림으로 부르르몸떠는....

기다림으로인한 설레임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또하나의 축복이라 믿습니다.

익명 :

기다린다고 사랑이 오지는 않죠..상대도 하염없이 눈을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깐..

익명 :

날씨가 추워지면 몸도 마음도 업니다.
눈이 내리는 이유는 얼어버린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몸의 체온을 올려주고, 아름다운 눈으로 덮힌 도로와 집 그리고 산을 보며 바쁜 삶에 얼어버린 마음에 훈훈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그 따뜻함으로 녹여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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