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서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가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댓글 6개:
눈이 세상에 다녀가는 이유.
안도현같은 아름다운 시인이 있어서?
필자님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알고 되셨나요?
시를 좋아해서(아니 사랑해서) 시집들을 좀 갖고 있어요. 가끔 시집을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특히 안도현님의 시는 예전에 칼럼에서 인용한 적도 있는데.
"짠한" 무엇이 있죠.
첫 눈이 왔다고 좋아할 것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후로 갑자기 날씨가 무지 추워졌습니다...
기다림으로 부르르몸떠는....
기다림으로인한 설레임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또하나의 축복이라 믿습니다.
기다린다고 사랑이 오지는 않죠..상대도 하염없이 눈을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깐..
날씨가 추워지면 몸도 마음도 업니다.
눈이 내리는 이유는 얼어버린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몸의 체온을 올려주고, 아름다운 눈으로 덮힌 도로와 집 그리고 산을 보며 바쁜 삶에 얼어버린 마음에 훈훈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그 따뜻함으로 녹여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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