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고요.
아마도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보신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1980년대에 장산곶매를 설립했던 홍기선 감독(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의 제작에 참여했죠)이 1992년에 만든 첫 번째 상업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92년 낭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1993년 산레모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죠. 또한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고, 주연을 맡은 조재현(여러분이 아는 바로 그 배우죠)은 청룡영화상 신인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조재현이 속아서 멍텅구리배(새우잡이배)에 팔리게 되는데, 배에 억류된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과 이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여자는 인신매매 되어 섬의 술집에 팔리고 남자는 새우잡이배에 팔린다는 소문이 유행했죠. 그런 시절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멍텅구리배에 대해 궁금하시면 링크)
이 영화는 1991년 영화진흥공사의 사전 제작 지원작으로 낙점되었다가 번복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고, 국내 개봉 당시에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엄청나게 칼질이 돼 개봉되어(당시는 흔한 일이었죠) 제대로 감상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흥행에도 실패해서 곧바로 잊혀진 영화가 되어버린 비운의 영화입니다.
저는 당시에 이 영화를 못 보고 그 후 계속 이 영화가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드디어 이 영화를 본 것입니다! (혹시 DVD라도 나오나 가끔 찾아보곤 했는데 17년 만에 봤습니다. 흑흑)
영화의 화질은 참 안 좋더군요. 중간에 끊기는 부분도 있고. 영화 내용도 솔직히 기대보다는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기대를 하기는 했죠. 당시 칼질을 엄청나게 당했다기에 자극적인 부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더군요. 아마도 리얼한 욕설 등이 주로 잘렸던 거 같아요. 기대보다는 영화가 평범했지만 그래도 소원 하나 풀었습니다.
탤런트이자 연극배우, 영화배우인 조재현은 한 20년 전 TV 단막극(MBC의 특집극이었는데 제목이 ‘누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에서 처음 보았는데, 누명을 쓴 주인공 청년역을 하도 절절하게 해서 그때부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초반 그가 그리 유명하지 않았을 때 그가 출연한 연극을 관람한 후, 공연 관계자에게 얘기해서 그와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 잠시 대화를 하고 싸인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갖고 있죠. 그때 제가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 출연해 주세요~"라고 말한 기억이..)
이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악어’에서 엄청난 명연기를 펼쳤고 ‘피아노’, ‘눈사람’ 등의 TV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어서 현재의 위치에 이르고 있죠. 최근에는 대학로의 연극열전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고요.
그는 TV, 영화, 연극 모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독특한 배우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를 여전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예전만은 못해요. 초기의 거칠고 힘 있는 연기를 이제는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작품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럴 수 밖에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강한 연기력을 생각할 때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쨌든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보았고, 조재현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보았으니 만족합니다.
무언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 있고(비록 작은 것일 지라도), 이렇게 하나씩 이루는 맛이 있으니 인생이 즐겁습니다. ^^
댓글 4개: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그날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려니 오히려 죄송했어요. 내려오신 모습 뵙고 가야하는것이 아닌가 하구요.
이렇게나마 후기를 남기신것 보고 마음의 위안을 삼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다음에 뵐께요.
행복하세요. 바비님.
To 새우깡소년님/ 신경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음에 뵈어요~
학교다닐때 왠지 제목이 가슴에 와닿아서 동아리 행사에서 상영했던 영화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화질이 그리 좋지 않고 게다가 그당시 프로젝터라는것이 그렇게 좋은것이 아니라서..ㅠㅠ 반응은 별로였던것으로.^^ 개인적으로도 참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생각난김에 한번 더 보고 싶네요.
저도 제대 후 복학하자마자 학교 대강당에서 저 영화를 봤습니다. 편집되지 않은 필름으로 총학에서 상영회를 열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당시 꽤 인상깊게 봤는데요. 선배들이 '가슴에 돋는 털을 칼로 자르고'라고 우스개삼아 부르던 기억이 선명하네요.ㅎㅎ
오랫만에 이 영화 얘기 듣게 돼 기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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