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몽키즈를 안보신 분께: 스포일러가 있으니 감안하고 보세요)
여러분은 아마도 테리 길리엄 감독의 ‘12 몽키즈’를 아실 겁니다. 아직 안보신 분은 당장 보세요~
1995년 영화이지만 이런 영화 쉽게 만나기 힘듭니다. (테리 길리엄 강독은 영화 마니아들한테는 일찍이 ‘브라질’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감독인데, 저도 20년 전에 ‘브라질’을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My Favorite 영화 톱10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12 몽키즈의 스토리는 조금 복잡합니다. 어렸을 때 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것을 강렬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남자(브루스 윌리스)가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진 지구에서 죄수인 브루스 윌리스는 사명을 띠고서 과거로 보내지게 되는데, 그 과거에서 죽습니다. 바로 그 죽음을 목격하는 소년이 바로 어렸을 때의 브루스 윌리스죠. 시작 장면과 끝 장면이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구성이죠.
참 좋아한 영화였는데, 12 몽키즈의 원작이 바로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환송대(La Jetée)’라는 사실을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알았습니다!
이번 JIFF의 마스터 클래스 섹션에서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레벨 5’가 상영되었는데 사전에 영화 해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 이제야 알다니.. 바보)
그리고 ‘환송대’를 영화제에 참가하기 전에 어렵게 구해서 보았습니다. ‘환송대’는 1962년에 만들어진 30분짜리 단편 흑백영화입니다. 특이하게도 딱 한 씬만 제외하고는 영화 전체가 나레이션, 스틸 사진, 음악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1초에 한번 정도 스틸 사진이 바뀌며, 동영상은 딱 한 장면에서만 나옵니다. 1초에 한번 바뀌는 영상을 영화라고 해야 할 지. 어쨌건 아주 독특합니다.
솔직히 영화는 별로 재미가 있진 않습니다. 그래요, 이런 류의 영화는 재미로 보는 게 아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영화의 스틸과 음악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환송대는 영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시였던 것입니다.
12 몽키즈는 환송대의 중요한 플롯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큰 뼈대가 동일합니다. 이로서 테리 길리엄 감독에게 제가 가졌던 존경심의 일정 부분이 원작자인 크리스 마르케 감독에게 이전되었습니다. ^^
시간여행, 기억과 암시, 실존에 대한 의문.
킬링타임용 영화도 좋지만, 이런 영화 너무 좋습니다. 좋은 영화는 한 권의 좋은 책과도 같죠. 읽고나서 남는 게 있고 시간이 흘러도 곱씹어볼 뭔가가 있어요. 진지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분은 12몽키즈와 환송대를 한꺼번에 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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