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주말을 보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따지자면 ‘약한 지지자’였다고나 할까요. 고인이 대통령이 될 즈음 그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을 하는 동안 업적에 실망하여 기대를 버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참 평범하죠)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노무현 전대통령께 나는 그리도 모진 잣대를 들이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고민의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세상이 평가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고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고인의 공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고인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또한 한 평생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고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고, 그것이 좌절하자 스스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대통령.
주말 내내 고인을 떠올리면, 깊은 연민에 얼굴이 상기되고 눈물이 나더군요.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Nobody is perfect(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이란 실수를 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도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가족들이라면 더욱 그렇죠.
검찰은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들을 미리 흘리고 조중동은 그것을 크게 홍보했죠. 정부가, 검찰이, 조중동이 자신들이 그리도 싫어하고 만만하게 생각한 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이 죄의식조차 못 느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음에도, 고인은 가족과 측근들의 죄(아니,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죄)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현 시대는 권력자와 재벌 등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이 시대에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주변 친지들의 모든 죄를 사하고, 지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 현존했다니. 이런 격언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려면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저는 깊이 슬퍼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성의 감동입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제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는.
현 시대에 만나기 힘든 놀라운 신념과 희생을 보여준 노무현 전대통령께 Roy Orbison이 부르는 Danny Boy를 바칩니다.
PS: 오늘 외출을 했다가 일부러 시청 앞에 갔습니다. 덕수궁에 시민단체가 마련한 분향소에 가보려고 했는데 경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경찰이 통로를 막고 있어 조문하는데 4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경찰이 어떻게 조문도 못하게 막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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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하는데 5년이 걸렸는데, 현 정권은 1년 만에 70년대로 회귀시키는군요.
하단은 제가 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경찰차에 적힌 공허한 표어
5/30까지 절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