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우리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급제도

델마당에서 레퍼러가 많이 잡혀서 살펴보니 어떤 분이 제 글을 링크해 놓았더군요.

[델마당/자유게시판] 기사자격증 없으면 초급개발자랍니다

SW 기술자 등급제도는 참 씁쓸한 제도입니다. 신뢰가 없는 사회이다 보니, 이런 식의 전혀 SW 산업스럽지않은 제도도 만들어지고 그러는군요. 기존의 학력/경력 위주의 등급 산정이 문제가 많았는데 그것을 올바르게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8월 1일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제도는 반드시 국가기술 자격증이 있어야만 SW 기술자 승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된 것이죠.

초급까지는 학력과 경력을 인정하지만, 중급/고급/특급은 학력과 경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기술자격증과 SW분야 업무경력만 인정한다고 합니다.

‘행정편의’를 위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지 심플하게 만든 것이죠.

저도 대학 때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 병특을 하려면 국가기술 자격증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 밖에는 아무런 쓸 곳이 없었고 필요한 적도 없었습니다.

공무원 시험 시 가산점 등 국가기술 자격증의 용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상 민간에서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국가기술 자격증이 SW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실력을 입증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운 SW 기술자 등급제도의 주요사항이 정리된 기사가 있어 링크합니다.

관련기사: [고뉴스] SW취업지망생, ‘자격증’ 취득이 필수

뭔가 막 규칙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합리적으로 보이지가 않네요. 책상에서 만든 어설픈 프로세스와 룰이랄까요. 실제 제대로 된 공청회와 의견 수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뢰가 없는 사회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 제도 또한 신뢰하기 힘든 관계로, 최근에는 SW산업협회에 제출하는 경력증명서를 위변조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없다고 하네요. 등록되는 개개인의 수많은 경력을 일일히 검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럴 수 밖에요.

문제가 있으면 본질적인 원인을 해결해야지, 이렇게 땜빵을 하니까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닐까요?

어쨌든 이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과거의 경력을 증명하기 힘든 프리랜서들, 그리고 정부 기준의 증명서 발급이 힘든 외국 기업 경력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현재 초급 기술자들은 자격증 없이는 절대 승급이 안되니 향후에는 자격증 취득의 오버헤드가 상당 하겠네요. 물론 기존 인력들도 자격증 취득의 부담을 안게 될 것이고요.

근래에 개발자를 4D 업종이라고 하는데(기존의 3D + Dreamless), 가뜩이나 개발자에 입문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자격증 부담까지 주다니..

그렇지만 이것에 동조하는 기업들도 꽤 있어서, 개발자 채용 시에 이 기준으로 경력을 산정하거나 또는 사내 개발자 평가에 이 기준을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삼성SDS, 티맥스소프트, 한글과컴퓨터 등은 자사 개발자들을 일괄 신고할 방침이라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제도는 한국의 SW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 폐해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봅니다.

제발 공무원들과 교수들이 책상에서 이런 제도 만들지 말고요.

1. 개발자들과 SW기업인들로 구성된 TFT 만들어 충분한 페이 지불하고 시간 투자해서 1차 결과물 만듭시다. 이런 제도 만들 때 보면 개발자의 의견은 아예 듣지도 않더군요.

2. 1차 결과물 나오면 공청회 및 토론회 최소 일년 정도 수 차례에 걸쳐 진행하면서 튜닝합시다. 비참한 SW산업 현실입니다만, 그래도 아쉬우나마 한국 상황에 최적화된 제도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제도가 최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목표로, 올바른 사람에 의해서, 올바른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기에.

댓글 6개:

익명 :

ㅎㅎ..안그래도 제가 이번에 6년차라..
올해 기사를 안 따면..내년에 중급이 못된다는...;;; 참 불합리한 제도죠.. 류한석님 말씀대로 불신이 이런 일이 생기게 만드는 원인인듯 합니다..좀 먼가 획기적인 방안이 존재해야 할듯해요..

Unknown :

정말 저 제도는 어이가 없더군요.
기존의 일하던 사람들의 등급문제들도 그렇지만 또하나 걱정되는건 작은회사(?)에서 PM/PL이라고 일도안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격증만 가지고 시간때우고는 고급/특급으로 인정받을때가 더 걱정되더군요.

익명 :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제도입니다.
그냥 읽어도 말이 안되는데
이걸 하라고 하니 복창이 터지는 군요.

윗분들 소프트웨어산업을 죽일려고 안간힘을 쓰시고 계시나봅니다.

개인적으로 초급개발자의 길을 가고있는데.
상당히 악영향이 보입니다.

이민을 생각해야 할까요.. -_-;

익명 :

드디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도 건축사 자격증처럼 대여비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군요.
건축사가 설계감리 잘못해서 건물 무너지면 구속되기도 하는데... 소프트웨어 버그생기면 구속되는 건가요?

익명 :

요즘은 정보처리기사 가지면 30학점 인정해준다는군요;

그나마 정말 쓸모 없었던 옛날보다는 나아졌다고 해야하나요; 아직 학생인 것에 감사하면서 올해엔 따놓을 생각입니다-_-

익명 :

저도 여기에 딱 걸려서 5년간 해온 저보다 자격증 있는 신입사원이 중급을 목에 걸고 일하게되었어요.
가뜩이나 전자관련공부도 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답답하기만 하더군요.
진짜 돈주고 자격 사고 능력을 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올해는 자격증 따야지 회사서 좀 덜 압박 받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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