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3일

매킨토시의 탄생 비화, “미래를 만든 Geeks”

이런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다니 깜놀했습니다. 책의 주제는 “매킨토시 탄생 스토리”입니다. 아예 책의 제목을 그렇게 붙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책의 내용은 맥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세세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맥 출시 후의 이야기까지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거의 야사 수준의 에피소드들도 많이 나옵니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험은 부족했으나 위대한 일을 하려고 했던 이 젊은이들이 오늘날 일상에서 쓰이는 핵심 기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회상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들이 쓴 글과 그림을 보며, 혁신의 규칙이 돈이 아니라 내면의 보상에 의해 이끌어지던 매우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면, 최상의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만들어지는 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맥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나오지만 아이폰 프로젝트 또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을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잡스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거 같습니다. 슈퍼 영리해진 게 다를 뿐.

맥 팀원들 (출처- http://www.folklore.org)

이 책은 특히 개발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만일 8비트 PC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던 사람이라면 아주 딱 맞습니다. 정겨운 애플II 얘기도 많이 나오고요.

이 책은 최상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와 경영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기술적인 내용이 상당하기에 용어와 스토리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필히 감안하세요.

이 책에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그의 독특한(?) 성격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들이 많죠. 스티브 워즈니악도 등장하고, 빌 게이츠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과 함께 제 의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81년 2월, 맥 프로젝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버드 트리블이 잡스의 재능을 정의했다.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 스타트렉에서 나온 용어). “잡스가 있는 자리에서는 현실이 이리저리 변해. 사실상 누구에게나 거의 무엇이든 납득시킬 수 있어. 잡스가 주위에 없으면 왜곡장이 차츰 사라지지.

또한 잡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보통 시시하다고 대꾸해 놓고는 그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면 정확히 1주일 후에 돌아와 그 아이디어를 자신이 생각해낸 것처럼 이야기해.”

이 대목만 보면 잡스가 부하직원의 공과를 가로채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아이디어라는 측면에서는 물론 그렇겠지만), 잡스는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에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팀원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에도 무척이나 관심이 많아서, 맥 케이스의 안쪽에 팀원들의 이름을 새겨 제품을 양산하기도 했으며(잡스는 팀원들이 예술가이며 예술가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맥 출시 직후 사전 예고 없이 팀원들에게 무상으로 맥을 증정하기도 했습니다. 제품 발표회에서 팀원들을 소개시키는 것 또한 잡스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맥 케이스 안쪽에 새긴 맥 팀원들의 서명 (출처- http://www.folklore.org)

거의 30년 전의 일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런 식으로 직원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경영자를 만나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잡스는 독재자였고 애플에서 가장 성격이 나쁜 사람으로 공인 받고 있었지만, 팀은 놀라울 정도로 수평적으로 운영되었고 잡스 자신이 틀렸을 시에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했고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감수했다고 합니다. 그런 잡스이기에 변덕이 심하고 괴팍해도 팀원들 대부분이 잡스를 인정하고 따랐던 것이죠.

맥 팀의 디자이너 수잔 케어가 그린, 잡스 아이콘 (출처- http://www.folklore.org)

저는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리더가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도, 개개인이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조성한 것이 현재의 애플을 만든 힘이 아닐까요?

얼마전 잡스는 애플이 가장 오래된 벤처이며 여전히 벤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타기업으로서는 어떻게 흉내를 내기도 힘든 그런 조직 문화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속단하지 마시길.

책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일화도 나옵니다. 애플II에 탑재된 애플 소프트 베이직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스프트는 애플의 잘나가는 써드파티 회사였고, 그로 인해 맥 출시 전부터 맥용 오피스 개발에 많은 지원을 받기도 했죠.

맥을 개발할 당시 애플의 캐시카우는 애플II였는데, 당시 애플은 마이크소프트와 애플 소프트 베이직의 라이선스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즈음 맥 팀원인 돈 덴먼이 맥 베이직를 개발했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베이직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때 빌 게이츠의 비즈니스 감각이 빛을 발합니다.

1985년 6월, 빌 게이츠는 애플을 재정적으로 압박했고 그 점을 철저히 이용했는데 그의 무자비한 사업 수완을 잘 보여준 사례다. 빌 게이츠는 돈이 개발한 베이직이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애플 소프트 베이직 계약을 갱신하는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애플이 맥 베이직을 포기하기를 요구했다. 그런 다음 게이츠는 맥 베이직을 애플로부터 1달러라는 가격으로 사서 묻어버렸다.

그는 또 애플 소프트 베이직(맥이 애플II를 대체함에 따라 1~2년 안에 쓸모 없어질 터였다) 계약 갱신을 이용해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얻어냈다. 이 계약은 1985년 11월 존 스컬리가 추진했는데 애플 역사에서 단일한 건으로 최악의 거래였을 것이다.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GUI 소송에서 패소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위의 계약 때문이었습니다. 법원은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부주의하게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준 것으로 판결한 것이죠.

색다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1982년 7월 앨런 케이(객체 지향 프로그래밍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선구자)의 세미나를 듣게 되는데, 그때 메모한 내용이 스캔되어 책에 그대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웹에도 텍스트로 소개되어 있으니 한번 보십시오.

Alan Kay's talk at Creative Think seminar, July 20, 1982

사람들이 SNS에서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리얼 아이덴터티가 아니라 환타지 아이텐터티로 가져가는 경향, 그리고 웹 2.0적인 공유의 개념을 이미 30년전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와우, 역시 대단한 앨런 케이입니다.

그리고 앨런 케이는 다음의 명언도 남겼죠.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맥 팀은 엄청난 고생을 하고 결국 맥이 출시됩니다. 맥의 초기 광고를 한번 보시죠. 그 이후의 성과는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맥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에서의 인상적인 데모를 위해 맥 팀은 여러 준비를 하는데 그 내용 또한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으로 데모를 준비한 적이 여러 번 있기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984년 1월, 잡스는 드디어 대중 앞에서 매킨토시 첫 데모를 합니다. 바로 하단의 동영상이 그것입니다. 예전에도 몇 번 보았는데요. 잡스가 왜 가방에서 맥을 꺼내는지, 왜 포켓에서 3.5인치 디스켓을 꺼내는지, 그리고 데모 애플리케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고서 보니까 훨씬 감동적이더군요.

여러분도 한번 보시죠. 그리고 책을 읽은 다음에 다시 한번 보십시오. 프로젝트 스토리를 이해한 후에, 정말 행복해하는 잡스의 미소를 음미해 보세요.



이 책에는 정말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8비트 키드인 저로서는 소름 돋으며 읽은 부분들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제품의 개발을 꿈꾸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1983년 12월, 잡스와 전체 맥 팀원들 (출처- http://www.folklore.org)

댓글 9개:

익명 :

꼭 읽어봐야겠네요. 80년대 초반에 잡스에 대한 책을 읽고 CS 분야에 들어왔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존경스럽고 한편으론 원망스럽고 참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신성기 :

흥미로운글 감사합니다. 생일날 좋은 책을 소개 받으니 꼭 선물받은 기분이네요~~ 바로 주문들어갑니다.

지나가다 :

Pirates of sillicon valley 이 영화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팀원 잠도 안 재우고, 아이디어 가로채고 독선적이고 안 좋은 면만 많이 다루던거 같던데 저 책은 좀 틀린가 보네요...

ONESTONE :

아이폰4 발표마지막 팀원들 일일이 일으켜세워 전세계의 찬사를 받게했던 소름돋는 장면이 잊혀지지않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어떤 프로젝트의 팀원이었던 저에게 임원데모의 마지막에 항상 저의 공로를 기꺼이 설명해줬던 한 직장상사를 기억합니다. 저도 흉내를 좀 내려 해봤는데 간지가 안나요. 고맙습니다.

바비(Bobby) :

To ONESTONE/ ㅎㅎ 사실 난 별로 한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지. 우리가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역시 사람이란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우승 :

바로 구매했음. 늘 기본은 바뀌지 않는 법.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고.

우승 :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어서 한번 더 댓글. Show Stopper 라고 윈도우즈 NT 개발 비화에 대한 책인데 기술적인 얘기도 매우 많이 나오고 실제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의 애환, 팀간의 갈등등을 얘기하고 있는 책이였는데 말이죠. 국내판은 절판된 걸로 아는데, 번역판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래서 그냥 아마존의 링크를 그대로 답니다.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이책도 꽤 재밌었어요. NTFS 개발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나오고. 개발자가 버그프리가 되는 날이면 축하도 해주는 이벤트에서부터 자신의 패치를 빌드전에 어떻게든 반영할려고 빌드 담당자에게 청탁하는 것등등. 당시 책을 빌려줬는데 돌려주질 않아 잃어버렸네요. 매우 아쉽군요.
http://www.amazon.com/SHOW-STOPPER-CLOTH-BREAKNECK-GENERATION/dp/B0001OOTYI/ref=sr_1_1?ie=UTF8&s=books&qid=1279162417&sr=8-1

안세준 :

오랫만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이미 책주문이 완료되어 있군요...ㅋㄷ
좋은책 소개 고마워요~
슬~쩍 꼬투리(?)잡자면...
"만일 8비트 PC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던 사람이라면 아주 딱 맞습니다. 정겨운 애플II 얘기도 많이 나오고요."
애플II<-- 이거 노테이션을 이렇게 하시면...ㄷㄷ
APPLE ][ 이게 맞는데...ㅋㄷㅋㄷ

바비(Bobby) :

To 안세준님/ 이전 글 http://bobbyryu.blogspot.com/2010/04/msx-apple.html 에서는 그렇게 표기했는데, 이번에는 귀찮아서요. ㅎㅎ

APPLE ][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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