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7일

G마켓 스트레스의 의한, 옥션의 엄청난 실수

[동영상] 옥션의 연작 광고 보기
[쿠키뉴스] 삥뜯기,모텔정사,날치기…온라인 CF “너무하네”


최근 옥션의 연작 광고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양아치들이 학생들을 상대를 금품을 갈취하며 옥션을 광고하는 것이나, 남녀가 성행위를 하려고 하는데 청바지가 안 벗겨지는 상황에서 옥션을 광고하는 것이나, 소매치기 당한 여성의 팔이 잘려 있는 상황에서 옥션을 광고하는 것이나 모두 이슈가 될 만 하다.

특히 시체를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는 여성을 보여주며 “인생에는 명장면이 널려있다”라고 멘트를 날리는 ‘시체놀이’라는 광고에서는 이 회사 마인드의 심각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G마켓에 추월 당한 스트레스로 인해 옥션이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인가? 그런 것 같다.

이러한 네가티브 광고가 네티즌의 관심을 받아 상당한 조회 수를 올릴 수는 있겠지만(100% 그런 의도로 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단지 광고에 대한 호기심일 뿐 옥션의 기업 이미지나 매출 상승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이러한 ‘네가티브 광고’가 기업의 이미지만 실추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도대체 광고의 ‘광’자도 모르는 사람이 기획을 한 것일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한 채, 어떻게 시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여성을 보여주며 ‘인생의 명장면’ 운운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이번 광고를 통해 옥션의 기업 이미지가 올라가고 매출이 상승된다면, 이 세상은 확실히 나빠졌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얼마 전 롯데월드나 이번 옥션건으로 볼 때, 이것은 일종의 경항(트렌드)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아, (쓴 웃음을 지으며) What a wonderful world!

2006년 5월 4일

현재의 회사를 다닌 지 3년이 되었다


지난 5월 1일로 만3년을 넘겼다. 내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병역특례로 사원 시절을 보낸 첫 번째 회사 이후로, 최고로 오래 다닌 직장인 셈이다. 물론 그때에도 입사 3개월 만에 때려 치고 싶었으나 그만 두면 군대를 가야 했기에 겨우 3년을 채울 수 있었다. 내 기억에 그 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 불과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제 두 달만 더 다니면 현재의 회사가 내 일생에서 최고로 오래 다닌 직장이 되는 셈이다.

남들에게는 별 것이 아닌 일이지만, 내게는 남다르다.
내 일생은 이직(離職)으로 점철되고 있고, 많은 일들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던가.


사람이란 한 자리에서 성과를 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그 일을 해나갈 책임이 있다. 나는 그러한 책임을 외면하고 환경 탓을 하며 계속 환경을 바꿔 왔던 것이다. 하지만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나의 성격은 소심하고 게으르며, 쓸데없는 자존심만 강하다. 얼굴이 얇아서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스스로 못하고 또 듣기도 싫어한다. 까칠한 성격이라서, 올곧은 얘기랍시고 직설적으로 내뱉어서 타인들에게 상처를 준 일도 많았다. 잘못된 것은 누구보다도 잘 찾아내지만, 생각만큼 생산적이지는 못해서 변변히 이루어놓은 일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상당한 결점을 가진 인간이라서, 자칫하면 "나 잘났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네" 하면서 망가지기 쉬운 인간형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만 딱 한가지 장점이 있다면, 스스로의 결점을 가슴 절절히 깨닫고 ‘수양’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최악의 사태는 극복한 듯해서 스스로에 대해 일견 대견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지나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1단계는 넘어선 것이다. 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남들에게는 쉬운 일도 내게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언젠가 상처받은 마음을 끌어안고 홀로 울었던 기억이 난다. 타인들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많은 상처를 주었던 삶이었다.

"이제는 조금쯤은 달라질까"

그러한 작은 기대로 내일의 삶을 희망하지만, 인생은 언제나처럼 무심할 뿐이다.

깨달음...

내게 있어 인생의 가치는 ‘인간 수양’에 있다. 부실한 이 인간이, 죽을 때는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죽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한 마음으로 분발하고 있다.

내게 있어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꿈꾸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인생의 격언을 하나 소개한다.

인간에게는 3가지의 사건 밖에 없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태어나는 것은 느끼지 못한다. 죽는 것은 괴로워한다. 그리고 사는 일은 잊어버리고 있다. - 라브뤼이에르

UI에 대한 단상 (미디어 센터 자료를 보다가)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미디어 센터이다. 흔히 미디어 센터 UI는 10 foot UI 또는 디스턴스(distance) UI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바로 모니터 앞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톱 PC의 UI와는 달리, TV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채로 사용하는 UI라는 뜻이다.

그래서 10 foot UI는 PC와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으며 또 달라야 한다. 단순해야 하고 폰트도 커야 하고 동적이고도 애니메이션적인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새로운 미디어 센터의 동영상을 참고하시라.



이러한 10 foot UI의 핵심적인 다섯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깔끔해야 한다. 둘째, 단순해야 한다. 셋째, 매력적이어야 한다. 넷째,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직접적이야 한다.

이제 아키텍트도 UI적 사용성(usability)을 충분히 이해한 채로 아키텍처를 작성해야 한다. UI는 지금까지도 물론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 중요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효과적인 표현 기법이 절실해지고, 또한 젊은 세대들의 화려한 애니메이션의 선호가 UI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키텍트여, 개발자여, UI 나아가서는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에 관심을 가져보라. HCI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상당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이건 정말 엄청난 조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겠지만.

2006년 5월 1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에 대한 기사를 보고


[조선일보][이공계의 천국 스위스를 가다] 취리히연방공대

스위스에서는 상위 1%의 수재들이 이공계를 가고, 연구개발 인력의 초봉이 변호사 또는 의사와 비슷하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영악하다. 과학을 하고 싶고, 공학을 하고 싶어도 ,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안될 거 같아서 참는다. 예를 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정말 잘하던 후배가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계속 하고 싶어하면서도,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말하기를 프로그래밍은 나중에 취미로 하겠다고 했다.

어허, 이공계쪽 일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참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이공계의 위기다 !" 이런 거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네거티브 홍보 효과만 심해서 , 학부모나 학생들이 더 기피하게 될 뿐이다.

언론은,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이공계 분야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적 기반이다."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다!

그렇다면 융자 따위가 아니라 (스위스처럼) 등록금과 시설에 파격적으로 지원하고 이공계 출신이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스위스와 같은 그러한 방법 외에는 줄어드는 이공계 진학을 막을 방법이 전무한 것이다. 참고로 취리히연방공대는 한 해 2조 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가.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파격적 지원은 어려운 일이고, 사회적 합의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린 것이고, 앞으로도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는 흐름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이공계만 지원하냐는 일부의 반말을 무릅쓰고 그런 카리스마 있는 획기적인 정책 결정을 할만한 지도자가 우리에게 있는가? 글쎄, 그 정답은 이미 당신과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 하하

[참고]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Zurich, ETHZ, Eidgeno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urich, 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Zurich)는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이다. 흔히 ETH(에테하)로도 불리워진다. 유럽의 주요 대학이자 세계의 주요대학으로 손꼽히며 자연과학 및 공학에 대한 교육 및 연구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1854년 스위스 연방정부에 의해 설립되어 1855년 공업기술 전문학교(Eidgenossische Polytechnische Schule)로 처음 개교하였다. ETH는 스위스 연방정부가 직접 설립한 학교로써 스위스 주 정부인 칸톤이 설립한 취리히 대학교(University of Zurich)와는 다른 학교이다. 초창기에는 두 학교가 같은 건물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1909년에 비로소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여 대학교로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11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12개 학과를 가진 오늘날에 이른다. 1991년 제정 된 새로운 법률에 의해서 1993년 이후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Zurich), 로잔 연방공과대학교(EPFL) 및 4개의 연구기관이 연합하여 "ETH Bereich" 라는 연구 및 교육기관의 연합체제를 구성하였다.

아인슈타인 등이 이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이 학교의 학생 및 교수 출신으로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을 배출하였다. 영국 더 타임즈에서 간행하는 "Times Higher Education Supplement(THES)"에서 세계 10대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